인디CD 1장 내는데 500만원

④ 인디밴드 음반 제작…열악한 제작환경 판매량도 자신없지만 실험정신 결정체…연평균 4~5장 선봬

▲ 도내 인디밴드 '레이디스앤젠틀맨'의 재킷(왼쪽)과 '나인이얼스'의 재킷.
전북에서는 예향의 고장이라는 미명 아래 대중문화는 유독 열세다. 문화적 자산이 별로 없어서 일까, 관심을 없어서 일까. 정답은 후자 쪽에 가깝다. 기획력과 마케팅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중음악시장 속에서도 음악 본연을 추구하는 이들이 바로 인디음악인. 서바이벌 오디션 덕분에 서울에서 불고 있는 인디밴드 열풍은 전북에서도 마찬가지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흥망성쇠를 겪고 있는 이들은 매년 평균 4~5장 음반을 발매하고 있다. '문화, 경제로 읽다'에서는 인디밴드 앨범 제작을 통해 전북 대중음악 현주소를 짚어봤다.

 

인디밴드의 진실은 음반에 있다. 최근 인디밴드'ATLAT'('순수')가 벌써 세번 째 앨범'Stand on the Street'(거리에 서다)를 내놨다. 모던 락을 지향하는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매만지고 깎은 정교한 음악. 매년 꼬박꼬박 음반을 내온 이 밴드는 '인디밴드 1세대'까지는 아니어도 7년의 내공으로 전북 인디음악계 밑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연간 100회 이상 공연을 소화해온 이들은 그러나 음반 판매량에선 아직 자신이 없다.

 

인디밴드는 아니지만 국악계에서도 가뭄에 콩 나듯 음반을 제작하는 이들도 있다. 3년 전 대금연주자 이창선씨는 대금과 재즈 콰르텟을 접목시킨 기념비적인 음반'꿈꾸는 소년'을 내놨다. 대금에 신디사이저·드럼·퍼커션 등과 만나게 하는 과감한 실험 덕분에 프로듀서·엔지니어·연주자 등을 섭외하느라 서울로 향한 그는 온갖 고생을 다 했다. 대금연주자로서 잃은 것은 돈이겠으나, 얻은 것은 지명도와 성취감이다.

 

마찬가지로 입소문이 덜 난 데다 설 곳이 없은 지역 인디밴드에게 음반 제작은 스스로를 홍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이다. 제작 환경은 녹록치 않으나 그나마 전주에서 음반 제작이 가능한 곳은 'ATLAT' 리더인 이철수씨가 운영 중인 전주 다가동 '소울 레코딩 스튜디오'와 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거의 전부. 서바이벌 오디션 열풍으로 나만의 앨범을 제작하고픈 일반인들도 이곳을 심심치 않게 찾고 있으나 주된 고객은 아무래도 지역의 인디밴드들이다.

 

인디밴드 공연기획사 역할을 자처하는 '아트 스페이스 레드 제플린'을 운영 중인 정상현씨는 "'인디밴드의 음반 제작비는 대략 400~500만원 안팎"이라고 귀띔했다. 대개 스튜디오에서 곡을 녹음한 뒤 서울 레코드 회사에 이를 건네고 음반 자켓 사진을 첨부해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방식. 순수 제작비로만 따지면 레코딩비 100~150만원, CD 가공비 100~200만원, 이외에도 α가 붙는다. 녹음 기간이 길어지면 제작비도 당연히 뛴다. 하지만 앨범을 500장 찍든, 1000장 찍든 제작비에선 큰 차이가 없다.

 

'ATLAT'는 이번 앨범 500장을 찍기 위해 줄이고 줄여 300만원이 들었다. 욕심내서 서울에서 제작할 경우 비용은 껑충 뛴다. 대금연주자 이창선씨는 2000만원을 들여 '꿈꾸는 소년'을 4000장 찍고, 2000장 팔았다고 떠올렸다.

 

지명도가 있는 인디밴드는 그나마 낫지만, 이것마저 뒷받침되지 않은 밴드의 경우 음반 대신 디지털 음원만 등록하는 경우도 많다. 멜론·벅스·네이버 뮤직 등에 등록한 음원 한 곡을 누군가 다운로드 받을 경우 이들에게 떨어지는 건 100원도 안된다. 주류 음악시장에서 한참 물러서 있는 현실적 지위에서 음악만 해서 연명하겠다는 이들의 꿈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이돌 댄스 가수와 수십 년 경력의 록밴드, 실험정신 강한 인디밴드가 대중의 사랑을 고르게 나눠 먹고 자라는 생태계가 없는 우리나라에선, 더구나 지방에선 인디밴드로 살아가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없을 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개 이들이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밥벌이로 번 돈을 취미 삼아 하는 일에 쏟아붓는 형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밴드 '휴먼스', '나인이얼스', '레인보우 스테이지' 등은 올해 상반기 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다. 누추한 상황에서도 진정성이 깃든 음반을 꾸준히 내놓는 건 전북 대중음악사의 값진 열매. 백문(百聞)이 불여일청(不如一聽), 이들의 반짝이는 음악을 일일이 풀어내기가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