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내 젊은 날의 우상이기도 했다. 한때 위인이자 우상이었던 그가 혼자서 술 마시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도무지 쓸쓸하고 싱거워서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어떤 이유로든 혼자 술 마시는 모습은 유쾌하고 근사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독작은 뭔가에 상처받아 괴롭거나, 대작할 사람이 없는, 고단하고 우울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로썬 이 또한 할 만한 생각 아니겠는가? 요즘 젊은이들은 혼자 술을 따라 마시는 사람을 보면 3년 동안 애인이 안 생긴다고 질색을 하며 술병을 빼앗는다.
자작과 독작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째든 혼자 술 마시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건 꼭 내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세상을 원망하며 쓰디쓴 모습으로 혼자 술을 마시는 모습에 너무 익숙한 탓일까. 그러고 보니 기쁜 일 앞에서 혼자 기뻐하며 술 마시는 모습은 별로 본적이 없는듯하다.
꽃 사이에 앉아
혼자 마시자니
달이 찾아와
그림자까지 셋이 됐다.
달도 그림자도
술이야 못 마셔도
그들 더불어 이 봄밤을 즐기리.
내가 노래하면 달도 하늘을 서성거리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춘다.
이리 함께 놀다가
취하면 서로 헤어진다.
담담한 우리의 우정.
이것은 이백의 '독작'이란 시다.
이 시를 읽은 어느 날 독작에 대한 촌스럽고 독한 나의 편견은 마땅히 버려져야 했다. 사람은 물론 온 우주 만물을 감화시키는 그윽한 도를 풍류라고 한다. 꽃과 달을 벗 삼아 혼자 술을 마시는 이백의 풍류가 가히 신선의 경지다. 혼자 술 마시는 일은 막막하고 외로워 보여 궁상맞은 모습으로까지 격하시켰던 내 생각의 어리석음이라니. 하기야 소주 석 잔을 채 못 마시고 울렁증에 시달리는 내 못난 주량을 생각하면 독작이나 자작의 격을 운운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설프지만 내게도 독작의 기억은 있다. 살다 보면 술이 꼭 필요한 날이 있긴 있었다. 노엽고 쓰라려 우울함이 극에 달 할 때 어디든 기대어 위안 받고 싶은 날 말이다. 그런 날의 내 독작(?)은 침대위에서 아메리칸 식으로 마시는 맥주가 고작이지만 주체할 수 없는 취기에도 별 고통 없이 곧 바로 잠들 수 있어 이것도 좋았었다.
꽃이 지천인 이 봄밤, 꽃 밑에 앉아 흥타령이라도 부르면서 혼자 술을 마시고 싶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술잔에 꽃잎이 떨어져도 좋고 눈물이 떨어져도 기꺼울 것 같다. 술을 모든 나쁜 일의 화근처럼 여기는 사람과 술을 몰라 술에 휘둘리는 멋없는 사람이 어찌 그윽한 술의 정취를 알겠는가. 진동하는 꽃 내로 진저리를 치며 전전반측 잠 못 이루는 봄밤, 어떡하든 혼자 술을 마셔 볼 일이다. 그것은 독작이 주는 몽환의 자유가 얼마나 매혹인가 알아버리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꽃잎 한 장 떨어져도/ 봄볕이 줄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이 슬픔 어이 견디리.
가는 봄 탄식하는 두보의 시구 가 아니라도 봄밤은 아쉽고 허망하다. 환장 할 것 같은 마음에 엉망으로 흐트러져도 좋으니 그대들이여, 봄밤엔 홀로 술을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