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돌며 농촌 빈집을 털어 온 일당이 9개월여 만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빈집에서 훔친 통장에 잔액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해당 금융기관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등 대범하게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임실경찰서는 18일 전국을 돌며 빈농가에 침입해 금품을 훔친 이모씨(39) 등 2명에 대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이들로부터 일정한 수수료를 받고 훔친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한 김모씨(29·여) 특수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지난해 10월 24일 오전 9시께 임실군 오수면 이모씨(62)의 집에 침입해 현금 36만원과 통장, 인감도장 등을 훔친 뒤 통장에 들어있던 현금 2000만원을 인출했다. 이들은 이 같은 수법으로 같은 해 5월부터 최근까지 전북과 충남, 경북지역 빈농가에 침입해 모두 10차례에 걸쳐 훔친 통장에서 현금 9300만원을 인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이씨 등은 무전기를 사용하며 한 명이 집밖에서 망을 보고, 한 명이 빈집에 들어가 훔치는 등 역할을 분담했다.
특히 이들은 농가에서 통장과 주민등록증, 의료보험카드 등을 한곳에 보관한다는 점을 노렸으며, 피해자들의 집 전화기로 훔친 통장의 금융기관에 전화를 걸어 잔액을 확인하는 등 대범함을 보였다.
이들이 훔친 피해자들의 통장 비밀번호는 대부분 집 전화번호나 주민등록번호로 돼 있었으며, 심지어 통장에 적혀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영근 임실서 강력팀장은 "이들은 대부분의 노인들이 통장 비밀번호를 외우기 쉬운 집 전화번호나 주민등록번호로 한다는 점과 통장에 비밀번호를 적어 놓는다는 점 등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이 같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생년월일이나 전화번호 등으로 통장 비밀번호를 만들지 않고, 특히 통장에는 비밀번호를 적어놓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훔친 통장의 비밀번호와 잔액을 알아낸 이들은 직접 돈을 인출하지 않고, 3년 전 전주에서 알고 지내던 김씨에게 수고비 20만원을 주고 인출을 부탁하는 등 자신들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들은 임실·익산·남원·김제, 경북 상주, 충남 서산·부여 등에서 통장 등을 훔친 뒤 모두 전주지역에 와서 김씨를 통해 돈을 인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돈을 인출했던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씨 등이 '도박장을 운영하는데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맡긴 통장'이라며 '수고비를 줄 테니 돈을 찾아오라'고 해 현금을 인출했다"며 "훔친 통장인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CCTV 등을 통해 김씨가 피해자들이 도난당한 통장에서 계속해서 돈을 인출하는 것을 확인하고, 수사를 벌여왔다. 최근 이씨 등이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현금 인출을 요구한 것을 확인한 경찰은 지난 17일 오후 6시 40분께 전주시 금암동에서 이씨 등 2명을 긴급체포했다. 당시 이들은 익산에 사는 김모씨(76·여) 명의의 통장에 들어있던 현금 1070만원을 인출하고 나오던 중이었다.
이들은 인출한 돈을 도박이나 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의 여죄를 수사하는 한편 돈을 인출한 김씨의 공모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