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발하우스

문화공간을 통해 도시를 살리는 도시재생프로젝트가 여전히 대세다. 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이 산업화와 근대화과정, 정치 경제 중심의 개발사업과 도시재편이 가져온 도심 공동화와 슬럼화, 인구유출의 악순환 치유에 나섰기 때문이다.

 

독일 베를린은 일찌감치 부터 기존 공간의 리모델링을 통해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성공시킨 도시로 꼽힌다. 그 중의 하나. 관광객들이라면 누구나 흥미로울 아주 작고 오래된 공간이 있다. 베를린 크레우츠버그에 있는 '발하우스 콘서트홀'(Ballhaus Naunystrasse)이다.

 

발하우스의 전신은 사교댄스장. 19세기 베를린의 대표적인 사교댄스장이었던 건물을 1983년에 복원해 공연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양식은 역시 원형 그대로 남겨두었다. 덕분에 발하우스는 화려하게 리모델링된 재생공간들과는 달리 낡고 비좁은 구조가 특징이다. 건물 자체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비밀통로와도 같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불편함이 크지만, 삐걱거리는 계단 사이로 실험음악가들이 설치해놓은 파이프 연주기계나 지하의 소박하고 작은 바(bar), 꾸미지 않고도 낭만적인 분위기의 야외정원은 특별하다. 무도장을 바꾼 음악당은 객석이라고 해봐야 100여석이 전부. 규모는 작지만 베를린안의 자유로운 예술가 그룹의 창작무대로, 국제예술 무대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공간의 규모와 관계없이 오랫동안 전문적인 운영체제를 지켜온 것도 발하우스의 특징인데, 베를린 이주문화를 대표하는 연극, 음악회와 댄스, 퍼포먼스와 설치, 클래식과 현대음악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수익면에서도 성공적인 사례를 남기고 있다. 전체 운영비의 3분의 1정도를 이들 프로젝트 운영으로 충당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2007년 진행한 뮤직 페스티벌 'interface07'은 각종 사운드디자인과 비주얼아트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베를린과 로스앤젤레스의 문화교류를 이끌어냈다.

 

얼마 전부터 전주 한옥마을과 인접한 동문거리 일대가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낡은 건물 지하에 소극장이 들어서고, 낡고 오래되어 쓸모없어 보이던 비좁은 건물들에 친근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옷을 입은 다양한 공간들이 들어서고 있다.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는 개발논리의 성찬에 더 이상 마음 두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다. 이제 더 중요한 과제가 생겼다. 그 공간들의 활용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물론 지역주민들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