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골 스토리텔링

판소리 명창들의 얘기는 흥미로운 게 많다. 그 중 순창과 관련해 내려오는 에피소드 2가지를 최근 발행된 '옥천골 순창이야기'(순창공공도서관 펴냄)에서 재미있게 읽었다. 순창은 명당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고, 지금은 명맥을 잇지 못하고 있으나 명창들도 꽤 많이 배출한 고장이다.

 

첫번째는 서편제의 시조인 박유전 명창 얘기. 박유전은 어려서부터 애꾸눈으로 집에서 천덕꾸러기였다. 소리꾼이었던 부친은 당초 형을 명창으로 기르려고 했다. 그래서 순창군 복흥면 서마리 마재마을 집에서 김세종 명창이 사는 동계면 가작 쑥대미까지 찾아 다녔다. 한달에 한번 가는데 그때마다 부친은 선물과 음식을 장만해 박유전으로 하여금 지게 바작에 짊어지도록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박유전은 짜증이 났다. 등에 진 짐이 무거운데다 자신의 신세가 한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은 소리 선생이 가르쳐 주는 내용을 숙달을 못해 혼쭐이 나곤했다. 이를 지켜보다 못해 답답한 박유전이 부친에게 청했다. "아버지, 제발 소원이니 저도 김세종 명창 앞에서 소리 한번 하게 해 주세요." 그러자 부친이 "소리가 장난인 줄 아느냐?"면서 마지못해 허락했다. 형을 물리치고 김 명창 앞에 앉은 박유전은 춘향가 중 이별가 대목을 장단 하나 틀리지 않고 불렀다. 평소 형이 하던 소리를 듣고 반복해서 따라했던 것이다. 더욱이 그동안 가슴에 맺혔던 울분과 서러움을 소리에 실어 토해내니 김세종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박유전은 김세종에게 배운 동편제 소리에다 한이 서린 계면조와 통성덜미소리, 새소리, 귀곡성을 혼합해 새로운 창법을 개발해 냈다.

 

두번째는 장재백 명창 얘기. 남원 주생리 내동 출신으로 순창 임동리 장구목에서 살았던 장재백은 조선 8도 명창대회에서 장원을 했다. 그러자 판소리를 좋아했던 흥선대원군이 그에게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장재백 명창은 자신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이렇게 답했다. "우리 같은 천인계급인 광대들도 사후에 봉분(封墳)을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 후 조정에서는 소리꾼들도 봉분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장 명창이 그들의 신분을 양인(良人)으로 격상시키는 신분 해방운동을 한 셈이다.

 

이같은 스토리텔링은 일부 과장되거나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지역문화를 풍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상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