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마실길

"우리나라 어느 지역을 가건 이웃 마을로 놀러가던 마실길이 있고 나물 캐러 가던, 과거 보러 가던 길이 남아 있다. 자동차와 열차가 생기면서 잊히고 사라졌던 그 길을 다시 찾고, 잇고, 사람들이 걷기 시작한다면 아름답고 역사적인 새 길이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땅 걷기 모임'의 신정일 이사장은 '쓰리 고' 주창자다. 그는 "고스톱을 못 치지만 길을 '찾고 잇고 걷고', 그래서 '쓰리 고'만 하면 돈을 가장 적게 들이면서도 아름다운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왜 걷느냐고 묻는다.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할 때가 있다. 왜 걷는가. 길이 앞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남기 때문에? …걷다 보면 다른 생각, 다른 이야기들이 불쑥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산천유람의 매력이다." 신 이사장이 자신의 책 '길에서 행복해져라'에서 한 말이다.

 

2011년 4월 전 구간이 개통된 부안 변산 마실길은 신 이사장이 제안해 이뤄진 '쓰리 고'의 산물이다. 없어졌던 길을 찾고 닫혔던 길을 이어 만들었다. 해안 8개 코스(66㎞)와 내륙 5개 코스(74㎞) 등 모두 13개 코스(140㎞)다. 산과 들과 바다가 함께 함으로써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분위기를 띤다. 새만금전시관∼고사포∼격포∼궁항∼모항∼왕포∼곰소염전의 해안코스가 백미다. 바닷가 백사장을 걷다가 갯바위를 타고 넘기도 하고 산과 들길을 따라 걷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 주말 전문가 등과 함께 답사한 변산 마실길(격포∼모항간 14㎞)은 옥에 티랄까 부족한 게 많았다. 쓰레기가 널려 있었고 공중 화장실은 지저분했다. 간이 화장실도 턱 없이 부족했다. 일부 공사 구간은 차단된 채 대체 길이나 안내 표지판도 없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데 파전에 막걸리, 해삼 멍게에 소주 한잔 파는 곳도 없었다. 곳곳에서 먹거리와 지역 산품을 팔면서 주민소득과 연계하고 있는 지리산 둘레길이나 제주 올레길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해안 초소는 단장만 제대로 하면 역사와 쉼터의 훌륭한 공간이 될 법도 한데 폐가처럼 흉물로 방치돼 있었고….

 

변산 마실길은 '쓰리 고'만 있었지 산천유람의 낭만을 찾기엔 보완할 게 너무 많았다. 세심하지 않으면 뻥뻥 뚫린다. 김호수 부안군수가 직접 점검해야 할 것 같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