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문효치(文孝治)편 - 상상력의 견인으로 존재론적 초월·치유

▲ 문효치 시인
군산 옥구 출생 문효치(1943~) 시인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신문'과 '한국일보'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을 역임하고 '시문학상', '펜문학상',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군산 동중, 서울 배재중·고 교사를 거쳐 동국대, 추계예대 등에 출강하면서 현재 계간 '미네르바'주간으로 있다.

 

새는 어디론지 날아가

 

한 줌 흙으로 잠자는데

 

울음소리는 가지에 빨갛게 달려서

 

더욱 큰 소리로 울고 있다.

 

-'감나무'에서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허공에 태어나

 

수많은 촉수를 뻗어 휘젓는

 

사랑이여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에서

 

초기 시는 위와 같이 '울음', '한 줌 흙', '허공' 등 어둡고 아픈 상처로부터 시작된다. '새'는 이미 죽고 없건만, 그가 남긴 울음소리는 아직도 가지에 빨갛게 남아 울고 있다. 닿을래야 닿을 수도, 뿌리를 내릴 수도 없는 허공의 절망감, 그것은 시인이며 만석군 집안의 종손이었던 아버지가 6.25 때, 공산당으로부터 형제들을 지키고자 인민군에 입대하면서부터 그에게 들이닥친 시련과 핍박의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어둠과 불안의 상처가 이후 그의 시의 기저를 이루면서 '맹수의 우리처럼/ 고독이 포효하는 창고에 갇혀'(「病中」에서) 젊은 날을 앓게 된다. 이때 그가 찾게 된 것이 비운의 왕국 백제에 대한 탐구이다. 여기에서 그는 오랜 세월 치유되지 않는 상처에 대한 자기 확인과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그의 가슴에서 아직도 불타고 있는 현재형의 폭력기제에 대한 자구적 방어책이기도 하다.

 

내소사 대숲

 

싸락눈 내리는 소리를

 

오늘은 한 가마니 지고 와야겠다

 

어서

 

내소사 대숲

 

찬 기운에 영근 푸른 달빛을

 

한 동이 이고 와야겠다

 

-「바다의 문6」부분

 

그러나 위의 제5시집 '바다의 문'에 와서는 이전의 시집들과는 다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사의 비극을 서늘한 서정의 깊이로 잠재우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네 영혼의 오두막에 등불을 밝힌다. '사랑이여/ 알을 깨고 나오라.// 이제는 굳게 여문/ 부리를 내두르며/ 알을 깨고 나오라 - 티 한 점 없는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라.'('너에게')와 같이 이전의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상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바닷물에 젖은

 

어둠이

 

내 살 속에 들어와 있던

 

물새 한 마리 지우고 있다.

 

- '바다 어둠'에서

 

바다는 그에게 부활의 성소다. 그러기에 '검은 보자기를 -바다에 날리면서', 혹은 '내 살 속에 살고 있던 물새 한 마리를 지우면서' 그는 이제 새롭게 부활한다. 민족적 정한과 향토정서로부터 시작된 그의 시가 점차 보이지 않는 그러나 어디엔가 남아 있을 어릴 적의 신화를 찾아 그의 시는 끊임없이 존재론적 초월을 꾀하고 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