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와 채소가게

이춘석 국회의원

"공직에서 쌓은 전문성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에서..."

 

청문회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공직후보자들의 일관된 답변이다. 과연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일까? 답은 '전관예우'다.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퇴임하자마자 한 달도 안 돼 기다렸다는 듯이 로펌이나 기업으로 줄달음을 치는 이유를 물으면 한결같이 이와 같은 해명이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전문성을 어디에 환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후보자와 청문위원들의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다.

 

전관예우는 본래 전직 판·검사들이 퇴임 후 처음 맡은 소송에 대해서 유리한 판결을 내려주는 특혜 정도의 의미였다. 그러나 요즘은 그 의미가 대폭 확대되었다. 전직 판·검사들뿐만 아니라 금융이나 군, 기타 행정기관에서 고위공직자로 퇴임한 사람들이 관련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대관 로비의 창구역할을 하면서 고액의 대가를 받는 것이 관례화된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추천된 장관 후보자들만 하더라도 퇴임 직후부터 지명되기 직전까지 한 달에 적게는 3천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까지 받고 있었다. 대개 후보자들은 퇴임직전까지 신고한 재산만큼의 돈을 퇴임 이후 1, 2년 사이에 벌어들였다. 마치 그 황금 같은 노후를 위해 오랫동안을 공직에서 인내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들에게 이렇게 고액의 대가가 주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의 해명대로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곰국처럼 우러나오는 전문성의 대가라고 하기에 그 돈의 액수는 과도하고 불편하다. 이들이 퇴임 후 1, 2년 동안 받는 연봉은 현재 우리나라 일반 노동자가 수십 년을 모아도 만질 수 없을 만큼의 수준이라는 점에서 노동의 대가라기보다는 차라리 일확천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합당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자본주의사회에서 이 원칙만큼 절대적인 진리가 있겠는가? 특히 자기 이윤의 확대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로펌을 포함한 대기업들이야 말하면 무엇하랴. 이들이 살을 베어 줄 때에는 뼈를 취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 횡령이나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 중에 있는 대기업 총수들 역시 이번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지명되자마자 그가 지명 직전까지 소속되어 있던 로펌으로 줄줄이 갈아탄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관예우는 불공정한 편법임과 동시에 사회적 병폐다. 국민의 세금으로 공직생활을 영위해 온 자가 그 경력과 인맥을 이용하여 사인과 사기업의 배를 불려주고 이익을 얻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사회의 특권계층이나 재벌기업에 대한 것일수록, 그 이익이 고액일수록 그로 인한 사회적 폐해와 비난의 정도는 더욱 크다.

 

국회가 통과시킨 전관예우금지법이 2011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공직자윤리법 역시 퇴직공직자의 유관기업 취업을 일정 기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감시해야 할 법조윤리협의회나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실질적인 감독기능을 하지 못해 유명무실하다. 지난 법무부장관후보자의 청문회에서도 법조윤리협의회는 후보자의 퇴임 이후 수임내역을 끝까지 제출하지 않았다. 물론 필자를 비롯해 국회에서는 이에 대한 더 강화된 법적 장치를 마련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법적 장치로 틀어막아도 장본인들의 자성 없이는 새는 물을 막을 수 없다.

 

전관예우를 둘러싼 각종 백태들에 바라보는 마음이 씁쓸한 이때에 한 대법관의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퇴임 후 총리직을 고사하고 채소가게 문을 연 김능환 전 대법관의 이야기다. 명품 유기농 채소가게가 아닌 동네 귀퉁이에 허름하게 자리한 보통 야채 과일가게다. 세금을 들여 공로패를 만드는 것조차 사양했다는 그의 뒷모습이 전관예우로 뒤틀려있는 오늘날 공직자의 자화상에 서릿발 같은 일침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