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연두

박성우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우물물에 설렁설렁 씻어 아삭 씹는

 

풋풋한 오이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옷깃에 쓱쓱 닦아 아사삭 깨물어 먹는

 

시큼한 풋사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연두

 

풋자두와 풋살구의 시큼시큼 풋풋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풋내가 나는 연두

 

연초록 그늘을 쫙쫙 펴는 버드나무의 연두

 

기지개 쭉쭉 켜는 느티나무의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초록이 아닌 연두

 

누가 뭐래도 푸릇푸릇 초록으로 가는 연두

 

빈집 감나무의 떫은 연두

 

강변 미루나무의 시시껄렁한 연두

 

난 연두가 좋아 늘 내 곁에 두고 싶은 연두,

 

연두색 형광펜 연두색 가방 연두색 팬티

 

연두색 티셔츠 연두색 커튼 연두색 베갯잇

 

난 연두가 좋아 연두색 타월로 박박 밀면

 

내 막막한 꿈도 연둣빛이 될 것 같은 연두

 

시시콜콜, 마냥 즐거워하는 철부지 같은 연두

 

몸 안에 날개가 들어 있다는 것도 까마득 모른 채

 

배추 잎을 신나게 갉아먹는 연두 애벌레 같은, 연두

 

아직 많은 것이 지나간 어른이 아니어서 좋은 연두

 

난 연두가 좋아 아직은 초록이 아닌 연두

 

 

△박성우 시인은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됐다. 시집으로 '거미','가뜬한 잠', 동시집으로 '불량 꽃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