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혀오는 포위망을 피해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하루 이틀이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갖고 나온 건 지슬이 전부. 지슬은 제주어로 감자다. 지슬은 그냥 감자가 아니다. 주민들을 지켜주는 유일한 식량이자 희망이다. 마을사람들을 서로 이어주는 매개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동굴 속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감자를 먹으며 집에 두고 온 돼지 먹이 걱정을 하고 시집 장가 얘기 같은 평범한 일상을 두런두런 얘기한다.
토벌대는 마을을 불사르고 학살을 자행하면서 동굴 속 마을사람들을 공격해오지만 주민들이 가진 무기라곤 매운 고추를 태워 낸 연기뿐이다. 영화는 선량한 마을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토벌대의 만행을 낱낱이 폭로한다. 살인, 방화, 강간, 부하 폭행과 고문…
이름도 없이 숨져간 희생자들의 제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감독의 생각을 보여주는 듯한 흑백 화면은 영상미가 뛰어나다. 그대로 갈무리하면 아름다운 예술사진 못지않겠다 싶은 장면이 여러 곳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