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난산마을 박춘옥 씨】로컬푸드서 길어올린 '자부심'…월급쟁이 안부러워

직매장 납품 안정적 수입 공판장 내는 것보다 짭짤 얼굴 걸고 파니 책임감 쑥

희망으로 심은 작물 값이 내려가던 어느 해. 농부라면 한 번쯤 제 살점과도 같은 밭을 갈아엎으며 눈물을 삼켜야만 했던 날이 있었다. 어느새 노인들만이 남아 지키던 삶의 터전. 제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 무엇하나 없는 해에도 쟁기 하나, 호미 하나로 땅을 다지던 그들의 삶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평생 외국에 나갈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그들이 로컬푸드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고, 작물 값을 더 쳐줄 때에도 공판장에 나서지 않았다. 적은 이윤을 내고서라도 로컬푸드 만큼은 지켜내야 한다는 사람들. 전북일보가 그들의 삶에서 농촌의 희망을 찾는다.

 

"로컬푸드 직매장이 효자에요. 소비자는 싼값에 사고 농사꾼은 제값 받을 수 있으니 좋죠. 지하 180m에서 물을 길어 키워낸 제 상추 안심하고 드세요."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 난산마을에 사는 박춘옥 씨(65)는 시집오던 21살 때부터 농사를 지었다. 냉이와 상추, 고추, 무, 오이, 고구마 순 등이 주 생산 품목인 박 씨. 그녀는 로컬푸드 직매장 판매자 등록번호를 빗대 '9번 형님'으로 불린다.

 

박 씨는 "완주로컬푸드 안대성 대표가 동네마다 순회교육을 다닐 때 인연을 맺게 됐다"며 "'좋은 상품을 키워만 내면 제값 주고 팔겠다'는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땐 사기꾼이 왔나 생각했었다"고 회상했다.

 

박 씨가 재배한 상추는 일 년 내내 1000원이다.

 

상추 가격이 쌀 때 공판장에 상추 일관(4kg)를 내놓으면 4000원을 받지만, 직매장에서는 일관을 250g짜리 15봉지로 소포장해 판매한다. 수수료 1000원을 내고 나면 박 씨의 수입은 1만4000원 선. 200g이 기준이지만 상춧값이 내려갈 땐 50g을 더 넣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수입이 생겨난 건 아니다.

 

전주시 효자동에 꾸려진 임시매장에 상추 20봉지를 내놓은 첫 일 주일은 10만원가량 벌었다. '유류값도 나오지 않는다'는 남편과 실랑이도 적지 않았다. 상추가격이 크게 올랐던 지난해엔 수십 년째 거래를 해오던 중매인의 출고 요청도 다독이며 거절했다.

 

그가 이렇게 로컬푸드를 고집하는 이유는 열무 값이 크게 떨어져 밭을 갈아엎은 경험에서 생겨났다. 이윤을 줄이더라고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어야 고품질의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 상추 가격이 오를 땐 일관에 8만원씩을 받을 수도 있지만,'소비자와의 신뢰를 지켜야 농촌도 살아남는다'는 박 씨는 로컬푸드 직매장에만 물건을 낸다.

 

"치과 간호사들이 상추 매장 진열대에 내 사진이 붙어 있다고 반가워하더라고요. 상품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물건을 대달라고 하는 사람까지 생겨났어요. 이름 걸고 파는 거라 책임감도 크지요."

 

그가 조금씩 내놓는 상추, 냉이가 신선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11월 말부터는 급격히 판매가 늘었다. 하루에 상추 100봉지, 냉이 70봉지를 가져가도 내려놓기 무섭게 팔려 나갔다. 저녁에 밥을 먹다가도 물건이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고 하우스로 달려나갔다. 일주일에 딱 한 번만 내놓는데도 두 달 반만에 600만원 가까이 벌었다. 공판장에 농산물을 판매할 땐 연평균 순수익이 2000만원 정도였지만 올해에는 그 이상을 예상하고 있다.

 

박 씨는 "안정적인 수입관리가 되다 보니 월급을 받는 기분"이라며 "무엇보다 다양한 작물을 지어 조금씩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 폭락에 대한 부담도 적다"고 말했다.

 

박 씨는 농촌의 미래가 로컬푸드 직매장 활성화에 달렸다고 믿는다. 때문에 보기 좋은 상품으로 만드는 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박 씨는 "처음에 말리던 남편도 로컬푸드 전도사로 변신했다"며 "소비자와 신뢰를 지켜가는 농사꾼이 많이 생겨날 수 있도록 로컬푸드 직매장에 자주 찾아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