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쇄신 주도해야 민주당이 산다

수석논설위원

작년 대선과 총선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새로운 정치'였다. 여야 모두 정치쇄신의 깃발을 펄럭이며 '새로운 정치'를 들고 나왔다. 기성 정당과 정치권의 행태에 대한 불신의 반작용이다.

 

새 정치는 정치 관행과 제도, 문화 등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는 컸다. 뼈저리게 반성하면서 낡은 정치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한 탓이다.

 

이를테면 기초단체장·의원 정당공천제 폐지,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 국회의원 '종신연금' 폐지, 국회의원 면책특권 제한, 국회의원 겸직 금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 등이 그런 것들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특권과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침이 마르도록 외쳐댔다. 불과 네달 전의 일이다.

 

이런 묵직한 개혁과제는 눈 앞의 선거가 없어야 적기다. 선거를 앞두고는 당리당략 때문에 쇄신을 이뤄내기가 어렵다. 다음 총선은 3년, 지방선거는 1년 3개월 남았다. 따라서 지금이 개혁의 호기다. 그런 데도 선거가 끝나고 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쇄신 공약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입에 발린 감언이설이 되고 만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더 문제다. 문재인을 찍은 1469만표는 적지 않은 표다. 그들의 염원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대선 패인을 분석하고 수권정당의 면모와 능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 첫 단계가 정치쇄신 과제들을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일이다. 당원과 국민에 대한 도리이고 진보성향의 야당이 해야 할 당연한 몫이기도 하다. 더구나 민주당 스스로 외쳐댄 공약 아닌가.

 

민주당은 지금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쇄신 공약들을 챙기지도 않고 있다. 대선평가위가 당내 패권주의와 계파정치의 폐해를 강하게 적시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두달전 민주당 지도부가 "잘못했다"며 버스 사과투어를 했을 땐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말로만 사과했지 진정성 있는 실천이 따르지 않았다. 국민 실망만 돋궜다.

 

국민을 물로 보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기주의적이고 너무 뻔뻔하다. 공약 따위는 선거 때만 필요한 언사(言辭)요, 국민 기만용 호언장담의 수단인 것처럼 비친다.

 

반면 5.4 전당대회에는 관심이 유별나다. 국회의원 자신들의 미래와 이해득실이 걸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임 짓는 일은 네 탓, 이익되는 일은 내 것의 전형이다. 패인의 하나로 지적된 계파·패권주의가 또다시 벌겋게 달아오를 것이다.

 

4.24 '서울 노원 병' 선거판에 안철수가 돌아왔다. 신당도 곧 태동될 것이다. 얼마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10%대 지지율, 3당 전락'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젠 별로 충격도 받지 않는 것 같다. 선거가 닥치면 감언이설, 호언장담으로 후다닥 벼락치기 공부한 경험 때문일까.

 

그동안 호남은 안전지대였다. 공천=당선인데 목줄을 쥔 당의 지도부만 쳐다보면 됐다. 정치쇄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게 구태요, 기득권에 기댄 안주(安住)다. 이걸 타파하고 국민을 쳐다보는 진심의 정치를 하자는 게 새로운 정치다.

 

새 정치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정치쇄신을 외면하고 국민을 기만한다면 안철수 신당 같은 대안을 선택할 것이다. 호남이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안전지대일 수는 없다. 지금 민주당에 대한 민심이 너무 좋지 않다. 겉으론 침묵하고 있지만 물결처럼 도도히 흐르는 게 민심이다. 민심을 잡을려면 국민 눈높이 정치쇄신을 주도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당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