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화의 허브도시를 꿈꾸자

홍성덕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전주는 역사적으로 기록문화 도시의 위상을 갖고 있다. 굳이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냈다는 역사적 경험을 말하지 않아도 전주는 지방의 단일도시로는 조선시대 가장 많은 책을 간행한 도시이다. 조선왕실의 비밀 도서인 실록과 귀중본을 보관했던 전주사고의 전통과 완판본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기록은 정보이고 그 정보를 담는 것은 매체이다. 어떤 정보를 어디에 담을 것인가는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사회ㆍ경제ㆍ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기록문화의 메카로서 전주가 한지로 유명한 것도 그런 맥락에 놓여있다.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것 역시 다양한 쓰임새 중 정보를 담아 널리 보급하고 후세에 전한다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시도이다. 그러나 매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조선시대 목판과 목활자의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정보를 구성하고 생산할 수 있으며, 이용하는 지식인 계층의 문화적 욕구가 없었다면 전주는 한갓 한지생산지에만 머물렀을 것이다.

 

지금, 전주의 기록문화 명성은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사업과 완판본 문화관의 설립, 한지산업지원센터, 국립무형유산원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탄소와 전자인쇄매체 산업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터이지만, 역사적 전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러한 다양한 하드웨어에 무엇을 담아 풀어낼 것인지에 대해서 발전적 지향점을 생각할 시점이다.

 

지난 3년 동안 전주시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전주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의 복본화를 끝냈을 뿐 아니라 조선후기 실록의 복본화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는 조선시대 사고와 실록 및 의궤의 보존 활용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오대산에는 실록 전시관을 설치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전남지역에서는 한국학 호남진흥원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도 하다. 안동 한국학진흥원에서는 경상도 지역의 기록문화를 샅샅이 뒤져 수집 연구하고 있다.

 

반면, 우리 지역은 어떨까? 적상산사고와 전주사고에 어느 지역보다 먼저 전시관을 꾸며 놓고, 어진 박물관을 개관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기록문화의 메카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데는 뒤처지고 있다. 전주의 한스타일도 소재(한지)는 들어가 있지만 한국학은 제외되어 있다. 얼마전 '한류원형문화권' 설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현 정부의 한류정책으로 K-Culture 전략을 모색 중에 있다. 가시적 노력이 조속이 이루어져야 할 때인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소재주의에 머물러 있다면 뜻은 크나 손에 쥐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공간으로서의 한옥마을과 소재로서의 한지, 생활로서의 한식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기록문화의 집적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스타일이던 K-Culture든지 특성화된 기록문화의 허브를 조성해야 한다. 한식ㆍ한지ㆍ한옥ㆍ한국음악ㆍ출판문화 등 전주가 가지고 있는 특화된 주제에 대한 기록정보의 수집과 운영을 담당할 수 있는 제도와 조직을 갖추는 것이다. '한류원형문화원'이 대안일 수도 있고, 'K-Culture Archives Center(한국문화기록센터)'를 설치해도 될 일이다.

 

포괄적이 아닌 세부적이며, 보편적이지 않은 특수성을 가진 기관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서 우리는 물리적 집적과 자료의 수집을 포함하여 활용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허브도시는 확산과 네트워크를 전제로 한다. 전주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느낄 수 있다는 명제가 과연 유효한 것일까? 언젠가는 사라질 신기루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