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이 사건은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한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의 무장봉기로 시작했다. 이후 1954년 9월, 한라산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했다. 현재까지 신고된 사건희생자는 1만5100명으로 집계됐지만, 최대 3만 명가량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제주도 주민이 30만 명이었으니 전체 인구의 10분의 1가량이 사망한 것이다.
'지슬'은 반공이념에 목숨을 빼앗긴 순박한 이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흑백필름에 담긴 영상은 마치 이분법에 가려져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하다. 개인의 삶보다 집단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냉혹한 전체주의를 지적하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단지 과거의 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떨떠름한 감정이 떠나질 않는다.
사실 전체주의의 망령은 지금도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특히 대학이 그렇다. 오늘날 대학은 효율성과 경쟁력을 자신의 이념으로 삼고 독단적인 행정을 일삼고 있다. 지난해 원광대는 재정지원 제한대학의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업률과 재정기여도가 낮은 6개 학과를 폐지하기로 했다. 윤정환, 김태영 등 스타선수를 배출한 동아대 축구부는 최근 3년간 성적이 좋지 않아 신입생을 뽑지 않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다. 부산외대는 학생 재적률이 낮다는 이유로 러시아인도통상학부를 통폐합시키겠다고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수도권 대학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연세대는 올해부터 강제로 신입생 수업을 국제캠퍼스에서 진행한다.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다. 교육 환경은 기존 캠퍼스보다 상당히 열악하다. 연세대와 한국외대는 자율전공학부를 폐지하고 각각 융합학부와 언어외교학부를 신설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 수렴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략됐다.
로스쿨이 생긴 대학의 법대는 신입생 모집이 폐지됐다. 각 대학은 최대 2017년까지 법대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전공수업은 교수 대신 시간강사가 하거나 교양수업으로 대체되니 강의의 질이 좋을 수 없다. 게다가 지난해엔 교육과학기술부가 법대를 당장 폐지하라는 지침을 내려 물의를 빚었다. 위의 사례들은 최근 1년간의 일들이다. 시간을 거슬러 가기에는 지면이 벅찰 만큼 대학은 무소불위의 전체주의 체제를 즐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계란에 바위치기 같은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제주도에서 반공이라는 이름의 총칼에 희생된 이들은 효율성과 경쟁력, 행정 편의성이라는 이름으로 권리를 빼앗긴 대학생들과 오버랩된다. '지슬'은 비극으로 막을 내리며 혼령들을 위로한다. 하지만 대학에게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이들의 이야기만큼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을 통해 무고한 희생자를 필수로 동반하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조금이나마 얇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