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에게 문학 읽기를 허하라

정의선 우석대 문예창작과 2학년

'청춘예찬' 원고를 처음 의뢰 받았을 때, 나는 최대한 글을 일상적인 소재로 부드럽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일상의 작은 소재를 보고 독자들이 두근거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내가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탁 터놓고 강한 어조로 말할만한 급이 안 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원고는 조금 강한 어조로 '이렇게 하라'고 외치고 싶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내 동생이 겪었던 일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내 동생이 다니는 고등학교는, 연합고사를 치러 들어가는 지금에도 지역 명문 소리를 듣고 있는 고등학교이다. 최소한 익산 시내에서 그 교복을 입고 다니면서 불이익을 받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학생들도 착하고, 공부도 잘 하는 이미지의 학교이며, 내가 그 학교에 재학할 때도 논술 및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타 오는 소위 명문이었다.

 

내 동생은 그 고등학교의 사서 동아리 소속이다. 사서 동아리는 학교 도서실에 있는 책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일을 맡아서 하고, 책을 신청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분기에 책을 신청할 때, 담당 선생님께서 시집과 소설책 목록을 보시며 이런 책들은 구입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런 책들은 이미 서가에 많이 꽂혀 있으며, 그런 책들을 보면 공부를 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였다. 과연, 과연 그럴까.

 

독서는 마음에 양식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좋은 책은 많이 보고 꼭꼭 씹어 먹을수록 좋은 법이다. 한 권의 책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인생을 바꾼다. 내 대학교 은사님께서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보고 힘을 내셔서 학문에 정진하셨고, 나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 읽었던 백석의 시집과 김형경 작가의 소설 때문에 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다. 세상에 책이 많은 만큼 사람의 인생을 바꿀 책 또한 찾기 어렵다. 그러기에 청소년-청년기에 끊임없이 독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책'들로 지칭된 '문학'은 사람의 진로를 바꾸기도 하고 사람의 인생을 휘어잡기도 한다. 청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문학을 접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세우는 것이다. 여러 자기소개서에서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물어보는 것도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야자에 시달리는 고등학생들이 가장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도서실이기 때문인지, 모교의 도서실 담당 선생님의 말씀이 더욱 더 씁쓸하게 느껴진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청춘이란, 책을 읽어야 한다. 인생을 바꿀만한 단 한권의 책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읽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언어영역 문제집에 밑줄을 쳐가면서 '역설적 표현.' '공감각적 심상' '비유적 표현' '주인공이 ~함을 암시.' 라고 적어놓을 게 아니라, 문학을 읽으면서 생각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대학에 갈 공부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인지 수능에 나올 문학이 아니면 읽지 못 하는 건가 싶어서 맘이 아파온다. 그나마 언어영역은 국사처럼 선택과목이 아니라 참 다행일 뿐이다.

 

괜히 마음이 텁텁해져서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친구는 웃으면서 자신의 친구는 너무 책을 많이 읽는다고 교무실에 들어가서 상담을 하고 나왔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를 해준다. 웃으면서 할 이야기를 입술을 깨물면서 하고 있는 꼴이다. 괜히 전화 받기가 퍽퍽해져서 매 달 독서토론에 나간다는 엄마가 형광펜을 치면서 읽고 있는 책을 떠들러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과연 책을 읽는 게 공부에 방해가 되는 걸까, 라고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에 야자시간에 책을 읽다가 책을 뺏긴 경험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그런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