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아름다운 삶의 가치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소설가 라대곤 회장님의 가시는 길에

▲ 故 소설가 라대곤
봄은 왔는데 소설가 라대곤(羅大坤) 회장님은 가셨습니다. 2013년 4월15일 오전 11시50분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다 힘차게 뛰고 달리고 있는 사이 회장님은 저승의 문고리 하나를 소리 없이 비틀고 떠나가셨습니다.

 

온 산하에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데 손잡고 웃음꽃 피울 꽃그늘 한마당도 미련 없이 밀쳐두고 떠나셨습니다. 누구 하나 배웅하는 사람도 없었고 누구 하나 어둡고 머나먼 길 앞에 횃불 잡아주는 사람도 없이 그는 서둘러 가셨습니다.

 

나처럼 또 누구 누구도 라회장님이 이승을 떠나셨다는 벽력같은 소식을 허허하게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사랑하는 라회장님은 아름다운 지구를 두고 더 예쁜 별나라를 찾아 그렇게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도 보고 싶고, 정겨운 목소리도 듣고 싶고, 따뜻한 손도 잡아보고 싶었을 텐데, 무엇이 그렇게 바빴는지 저승 가는 길에도 시간을 재촉하는 막차가 있었나 봅니다.

 

그 나라로 가는 길목에 그런 외통수 같은 막차가 있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혹시 살구꽃이 구름처럼 피어 있는 어느 주막집 앞에 어깨 짜고 서서 그가 지나치는 앞을 가로막아볼 걸 그랬습니다. 라회장님은 틀림없이 내리셔서 뒤늦은 악수도 나누면서 "부디 아프지 말고 잘들 살라"고 슬픈 이별사를 남겼을 것입니다.

 

우리의 희망이었던 라회장님은 수필과 소설을 재미있게 쓰면서 전북문단은 물론 한국문단 깊이 인간적인 교류와 문학발전을 위해 열정을 기울였습니다. 회장님은 한국수필문학의 가치를 지향하는 '수필과비평'의 회장으로서 자신의 아호를 붙인 신곡문학상을 제정, 창작의욕을 북돋는 등 여기저기 하늘만이 아는 보이지 않는 겸손의 손이 무척 컸었습니다.

 

수술 후 입맛이 없다는 라회장님과 함께 군산 해망동 바닷가에서 겸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극히 절제된 그의 식단이 눈물이 날 정도로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무엇이 평소 그의 기개 넘치는 호방과 자유와 낭만과 강기와 사랑과 배려와 조율과 관용과 내연의 힘을 저렇듯 일거에 앗아가 버릴 수 있을까 싶어 야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선가 무엇인가의 작희로 인해 라회장님의 인생궤적에 대한 기록 오류가 그 같은 아름다운 수식어들이 오자로 둔갑되거나 탈자가 되었을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바닷가에 앉아/ 말없이 겸상을 했다/ 숟가락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나도 그렇게 따라했다/ 어느 한구석 입맛 누릴 혀끝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밥상은 그릇과 그릇사이/ 자그락거리는 소리하나 없이/ 이를 잘 맞춰주었다/ 언 땅을 밀치고 일어서려는/ 민들레꽃기운을 길 가던 바람이/ 저렇듯 눈이 시리게 걸음 멈추고/ 다독거려 등 밀어줄 수 있을까/ 피되고 살되거라, 가슴 깊이 우려내 주는/ 아픈 낱말 몇 개가 보석처럼 웃고 있어/ 눈물이 났다/ 오랜만에 바닷가에서 그와/ 말없이 겸상을 했다/ 나도 덩달아 놓았다가 들었다가/ 떨리는 숟가락을 응시하며/ 자꾸만 고맙다는 절을 하고 싶었다.'

 

나는 그날 전주로 돌아와서 '라대곤 님의 밥상'이란 시를 썼습니다. 피되고 살 되라며 가슴깊이 우려내주던 그 몇 첨 안 되는 음식이 한없이 고맙기도 했지만 인색하기 짝이 없어 밉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평소 밥도 술도 복스럽게 즐기던 그가 투병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허기에 시달렸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얼마 전 병원에 있을 때 전화를 했더니 천길 늪 속으로 빨려드는 목소리로 "형, 나 기운이 하나도 없어." 그래서 나도 기운 없는 목소리로 "그래그래. 그래도 힘내야지." 그러고 그만 말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지푸라기로라도 묶어서 이끌어 줄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극한 상황에선 어디에다 손을 내밀어 빌어야 생명 하나가 구원받을 수 있을지 무력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라회장님은 지금쯤 지구에 두고 온 어여쁜 식구들과 몸 비비며 어울렸던 친지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 커피숍도 있고 바도 있고 세미나실도 있고 뮤직홀도 있고 댄스홀도 있고 막걸리집도 있고 횟집도 있고 만남의 광장도 있고 어여쁜 사람 머리위에 꽂아줄 꽃집도 있겠지요.

 

라회장님, 회장님이 병상에서 투병하시는 동안 많은 문인들과 정든 사람들이 밤낮없이 찾아와 슬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 속에는 회장님이 이 땅에 뿌리신 너무나도 인간적인 그리운 인간의 향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라대곤 회장님! 남아있는 우리들은 그대 이름 앞에 수식되는 진실한 삶의 가치와 사랑의 종소리가 담긴 이야기보따리를 이 땅 널리 펼치며, 펼치며 길이길이 추억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 깊은 잠 편히 드소서.

 

/ 김남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