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호스공예' 하는 일식집 사장 김광중씨

손끝의 마법…고무호스, 물고기가 되다

▲ 일식집을 운영하면서 허구헌 날 고무호스로 물고기를 만들어 아내의 고발(?)로 KBS의 '안녕하세요'에까지 출연한 김광중씨가 자신이 만든 작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광중씨(33)는 '행복한 아웃사이더'다. 회사와 조직, 월급에 목매고 사는 보통의 인사이더들과는 다르게 그는 자신만의 일탈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쉴새없이 아내에게서 쏟아지는 눈총은 여전하지만.

 

전주 금암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그의 낯이 익는 것은 KBS의 '안녕하세요'에 출연해서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허구헌 날 호스로 물고기를 만드는" 그가 아내의 고민을 유발하는 장본인. 가게를 찾았더니 하얀색 주방장 모자가 꽤나 잘 어울리는 건장한 체격에 인상 좋은 남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반긴다.

 

"어렸을 적부터 손재주가 있어 고등학교 시절 미술부 활동을 했어요."

 

남다른 감각과 손재주로 대학교 때 미술·건축 공부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외식조리학과로 전향하면서 요리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교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주방에서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오는 손님들과도 눈을 맞추고 얘기하기에 일식이 제격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물고기를 유달리 좋아하는 취향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물고기를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져요. 어렸을 때에도 물고기 모양을 너무 좋아해서 서류파일에 동네에서 파는 붕어빵을 모으기도 했거든요. 결국 파일 비닐 안에서 썩어서 버리긴 했지만요."

 

20대 초반 병원에 입원한 그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링거 줄을 꼬고 묶고 하다 우연히 물고기를 만들었다. 남다른 물고기 사랑이 바로 일명 '호스공예'로 재탄생하게 된 것. 현재까지 3000마리나 되는 호스 물고기를 만들었다.

 

주재료는 수도용 폐고무호스, 링거액 관 등. 그는 "호스를 구하러 고물상을 내 집 드나들 듯 했다. 고물상에서도 이런 게 왜 필요하냐고 돈도 안받고 그냥 가져가라고 하는 게 다반사"였다고 말했다.

 

투명 호스에 염색을 해서 자신만의 색감을 주기도 한다. 물고기를 더 화려하게 보이도록 하려면 색감이 중요하다는 판단. "전통자수실을 물에 담가두면 색깔이 빠져요. 그 물에 투명호스를 넣어두면 호스가 염색이 된답니다." 그만의 발색 노하우다.

 

인터뷰 도중 그는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며 차안을 조심스레 열어주었다. 역시나 차의 앞뒤·옆·창문할 것 없이 차안 가득 호스물고기로 도배가 돼 있었다. 그러더니 마치 안방을 꽃벽지로 도배하고 흐뭇하게 웃는 새댁 같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물고기 수가 많아지고 물고기 크기가 커지면서 아내 몰래 작은 원룸을 얻어 나만의 비밀 전시공간을 만들었는데. 방송에 나가면서 2년 만에 들통이 났어요." 하지만 그의 계획은 아직도 유효하다. 물고기가 5000마리가 되면 조촐하게 작은 전시장을 열 계획이라는 것.

 

그는 한 달에 두 번씩 가게문을 닫고 한옥마을로 발걸음을 한다. 물고기를 낚시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만들기 위해 나가는 것. 요리사 모자를 벗고 생활 공예가가 되어 한옥마을에서 관광객들에게 호스로 물고기를 만드는 시연을 보여주고 판매까지 호스가 주는 재질감이 귀걸이·목걸이 등 여성 악세서리와 잘 어울려 제법 판매가 된다.

 

"사람들이 제가 만드는 물고기를 보고 신기해하고 멋있다고 하면 그냥 기분이 좋네요."

 

한옥마을 어딘가에서 사람들에게 '호스 물고기'를 나눠주고 있을 그를 위해 이번주 한옥마을에 나들이 가보는 건 어떨런지.

 

호스 물고기 공예의 핵심은 '화려한 눈'

 

10년 넘게 호스로 물고기를 만들고 있는 김광중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의 대표적 서양화가 이중섭씨의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실제로 물고기는 다양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꿈속에서 물고기를 품에 안으면 꼭 좋은 일이 생긴다든 믿음이나, 또 불교에서 물고기는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 눈을 감지 않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듯 수행자도 물고기처럼 항상 부지런히 도를 닦으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물고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눈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장 크고 화려하게 장식한다고. 벽에 그린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 즉시 용이 하늘로 올라간 것처럼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마쳐 일을 완성시킨다는 '화룡점정'이란 말은 물고기를 통해 무료해질 수 있는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자신의 삶의 가치를 스스로 완성시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물고기에 빠진 그의 삶은 화룡점정과는 다른 길이었다. 호스를 사는 데에만 한 달에 100~200만원을 지출했고, 이 취미로 인해 다니던 회사에서 세 차례나 해고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호스 공예품을 보면서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관심을 갖고 예쁘다고 칭찬하면 그저 뿌듯하다"고 했다.

 

/임진아 문화전문시민기자(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