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이게 쑥이냐, 풀이냐? 구분이 잘 안 되는 구나." "쑥 맞아요.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무 말 없이 일어선 어머니는 몇 걸음 만에 다시 쪼그리고 앉으신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얼굴이 닿도록 가까이 대고 한참을 살피다가 "냉이는 없네…." 하고 중얼거리신다. 그러나 그곳에는 냉이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어머니는 나물 캐기 선수셨다. 몇 해 전만 해도 어머니를 모시고 야외에 나가면 바람처럼 들판 이곳저곳을 다니며 비닐봉지가 터지도록 쑥이며 냉이를 캐셨다. 나는 딴에는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어머니의 반만큼도 캐지 못했다.
우리 형제는 도심에서 자랐지만 유난히 봄을 챙기는 어머니 덕분에 흙과 풀냄새에 매우 친숙하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산과 들로 소풍 나가 봄나물 캐는 일을 즐겼다. 나는 나물 캐는 일보다는 봄 아지랑이에 정신을 팔거나 진달래꽃을 좇아 놀기에 바빴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과 산을 헤매다 점심때 나물을 바구니를 내밀면, 나물 대신 쓸데없는 풀만 캐왔다며 면박주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얘는 매번 그러잖니…."하시며 나를 끌어당겨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하였다. 그 어머니가 이제는 나물과 풀도 구별하지 못하셨다.
한 달 전쯤 어머니는 팔을 심하게 다치셨다. 설 준비를 하려고 시장에 가다가 빙판길에서 넘어져 병원 신세를 지셨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가녀린 팔에 깁스를 하고 병상에 누워 계신 모습에 목구멍이 화끈거렸다. 자식이 많은데도 늙으신 어머니 한 분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 같아 어찌나 가슴이 먹먹하던지. 그런데도 어머니는 한없이 촉촉한 음성으로 "놀랬지?"하며 침대 한편을 내어주셨다.
사춘기시절 나는 어머니에게 바보짓을 많이 했다. 아버지의 사업으로 덩달아 바빠지신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딸보다 공장 사람들을 더 챙기는 어머니를 원망하며 미워했다. 사업의 규모가 커지서 우리와 소풍 나가던 어머니의 다정한 모습을 개대할 수 없게 되어 더 원망스러웠다.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기리며 사업하는 남편을 지켜보면서 어머니의 그때 마음을 헤아리게는 되었지만….
"성급한 봄 땜에 어린 게 얼어 죽을 것 같구나."
구겨진 종이컵에 공원에서 캐 온 작고 볼품없는 야생화를 옮겨 담으시는 어머니의 바튼 손마디가 노란 꽃잎 사이로 흔들린다. 어릴 때 잡고 다니던 보드라운 손의 감촉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는데 무심한 세월이 어머니의 손마디를 저리 할퀴어 놓았다니.
한평생 궂은일 마다지 않으셨던 어머니, 이제는 편히 지내며 자식들에게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당당히 요구하셔도 될 텐데, 무얼 드시겠냐고 물으면 따로 먹고 싶은 게 뭐 있겠느냐고 하신다.
모처럼 갈치를 구워 도톰한 살을 발라 수저 위에 놓아 드린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나에게 해주었던 그대로다. 하지만 어머니는 생선살을 기어이 내 밥그릇에 옮겨 놓고 다른 반찬만 집으신다. 아마 이건 우리 어머니 평생 못 고칠 병인 성싶다.
공원에서 캐온 쑥과 냉이를 주방에 앉아 다듬는다. 앞에 앉은 어머니의 느린 손놀림도 분주하다.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집에 한 번 놀러 오너라." " 또 나물 캐러 가게요?" "그러자구나." "엄마, 냉잇국 맛있게 끓여 주실 거죠?"
어머니의 얼굴이 봄꽃처럼 환희 피어난다. 어머니를 다시 찾는 그날에 저 야생화도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겠지.
* 수필가 박경숙씨는 2010년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순수필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