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창고의 변신과 미래

근대화 과정의 가장 큰 산물은 도시 재편이다. 정치적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이루어져온 개발사업의 결과다. 그런데 도시 재편이 가져온 문제가 의외로 심각하다. 새로 건설된 신도시에 인구가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구도심의 인구가 빠져나가 결국 구도심 공동화와 슬럼화를 가져오는 악순환의 폐해다.

 

우리보다 앞서 구도심 활성화를 해결해야 했던 유럽 도시들의 성공적인 도시재생프로젝트는 대부분 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추진된 예가 많다. 구도심의 낡은 건축물을 재활용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지역 주민을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의 전략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도시들은 리모델링으로 얻은 문화공간을 세계적인 미술관이나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시켜 지역의 자산으로 만들었다.

 

완주 삼례에 낡은 공간을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 생겼다. 지난 5일 문을 연 삼례문화예술촌이다. 전신은 일제 강점기에 사용했던 낡은 양곡창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일곱 동 양곡창고는 아트갤러리와 디자인박물관, 책박물관과 책공방북아트센터, 목공소와 문화카페로 변신했다. 역사와 현대를 새롭게 조화시킨 공간의 변신은 반갑다.

 

이 공간을 둘러보면서 영국 게이츠헤드의 발틱현대미술관이 생각났다. 2002년 문을 연 이 미술관의 전신도 제분공장의 곡물창고였다. 게이츠헤드는 산업이 쇠퇴하면서 가난한 도시가 됐다. 도시재생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1990년, 이때 시가 주목한 것이 문화와 교육이다. 시는 현대미술관 건립을 계획하고 타인강변에 30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곡물 창고를 그 대상으로 정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미술관이 선택한 운영방식이다. 개관 당시부터 세계적인 큐레이터를 관장으로 임명해 화제가 됐던 이 미술관은 소장품을 들여놓기 위해 예산을 투자하고 주력하는 대신, 새 로운 미술을 생산해내는 현대미술의 중심을 지향했다. 국제적인 예술인을 양성하는 프로젝트로 세계의 젊은 예술가들을 불러 모으고 지역예술인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현대미술 '공장'으로 정체성을 강화했다. 그 결과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은 이미 오래전에 연평균 100만 명을 넘어섰고, 세이지 음악당 등 주변의 문화공간까지 가세하면서 문화관광도시로 이름을 올렸다.

 

삼례문화예술촌도 이러한 미래를 기대해 볼만하다. 문제는 재생공간이 갖추어야 할 독창성과 생명력이다. 물론 지속적인 고민과 지혜로운 선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