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 민경옥
할머니는 타고 난 재담가이셨다. 거의 매일 해어진 버선에 헝겊 조각을 덧대어 꿰매며 지치지도 않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 내용은 참으로 다양했는데 당신의 개인사뿐 아니라 예의범절, 음식 만드는 법, 사회상, 신앙고백 등을 구성지게 넘나드셨다.

 

그 때마다 턱을 괴고 앉아 말동무가 되어 드린 덕에 나는 20세기 중반에 태어났지만 19세기 말 정서에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권사님이신 할머니는 날마다 새벽기도회에 다니셨다. 교회에서 돌아오면 항상 라디오를 크게 트셨다. 잠결에 들은 것이라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닭 우는 소리와 함께 앞뒤로 하는 샘표간장 선전은 외우고 있다.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간장간장 샘표간장!'

 

아침마다 닭이 울어도 식구들은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를 단번에 깨울 수 있는 행사가 있었다. 그것은 화초에 재래식 거름을 주는 일이었다.

 

그 진동하는 냄새에 이 방 저 방에서 한 사람씩 툴툴거리며 일어나지만 할머니의 화초 키우는 취미를 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에게 당뇨병이 생겼다. 합병증으로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건강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기거하시는 건넌방은 깡통마다 콩가루, 우유가루, 황률, 땅콩, 곶감 등이 쟁여져 있었다. 물론 당신 돈으로 산 것임을 주지시키며 철저하게 금을 그으셨다.

 

그 방을 청소할 때 아랫목부터 닦기 시작하여 윗목으로 가면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문제의 우유가루 통이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 몰래 소리 나지 않게 뚜껑을 열고 한 숟갈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최대의 고민이자 유혹이었다. 결국 먹었다. 정말 달콤하고 고소했다.

 

후에 할머니의 대변인 역할을 하던 도우미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 방에 들어가는 손주들이 모두 나와 같은 시험에 들었나 보다. 별명이 변호사였던 할머니의 수사과정은 이랬다.

 

우유가루를 입에 털어 넣은 뒤 침과 엉켜 끈적거릴 즈음에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목소리가 탁하다는 것이다.

 

그 목소리로 증거를 포착하지만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니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다 알고 계셨단다.

 

이 사건으로 우리 오남매에게 청문회를 연다면 다들 할 말이 있다. 할머니는 당신의 세 아들 중 막내아들의 자녀들을 편애하여 우리를 분노케 했다.

 

그 사촌들이 오면 깡통 속에 든 맛난 것들이 다 자기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순위에서 밀린 우리 처지로는 우유가루를 훔쳐 먹어서라도 억울함을 보상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일로 할머니께 '경옥이 너마저!' 라는 실망을 안겨드린 것은 아직도 내 자존심에 흠집으로 남아있다.

 

이제 나도 할머니가 되었다. 미국에 있는 어린 손자가 자라면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며 얼굴에 미소를 가득 짓고 영상통화를 한다.

 

그러나 요즈음 젊은 부부들은 화장실과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외면한 채 처갓집 근처에 살며 장모님께 아기를 맡기고 맞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외할머니의 시중을 받고 자란 손주는 외할머니에게 더 정을 느끼는 게 당연지사다.

 

그러니 나처럼 아들밖에 없는 할머니가 손주를 무릎에 앉히고 흘러간 이야기를 하려는 꿈은 물 건너 간 것이 아닐까.

 

*수필가 민경옥씨는'수필시대'로 등단. 창작 오페라 '한국에서 온 편지'대본 우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