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가 떼 지어 나는, 매년 한여름이 되면 해남 이모네 집 생각이 난다. 그곳에서 지낸 초등학교 고학년 여름방학의 기억 때문이다. 이모네 집은 해남에서도 진도와 가까운, 공룡발자국 유적지가 있는 마을에 있다.
마을은 탁 트인 밭과 가늘게 뻗은 길 덕분에 멀리서도 잘 보였다. 가끔 바다 냄새가 마을까지 날아왔다. 야트막한 뒷산에는 선 자리에서 둘레가 다 보이는 호수가 있었다.
호수에는 자라가 많이 살았다. 이모네 집 마당은 온통 꽃잔디여서 초록색보다는 분홍색에 가까웠다. 비 온 다음날 해가 뜨면 꽃잔디는 빗방울을 머금어서 반짝였다. 꽃잔디 위에 앉아있는 잠자리들은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잠자리는 날개가 젖으면 마를 때까지 날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날개를 펴고 앉은 잠자리를 쓰다듬은 일은 내 어린 시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 집과 마을 전체에 여러 공장이 들어섰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장에 가려 눈으로 봐서는 마을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바다 냄새도 더는 불어오지 않았다. 자라가 살던 호수와 산은 사라졌고 밭과 집 대신 보상금을 받은 마을 사람들은 떠났다. 꽃잔디 위에는 이슬이 앉기 전에 먼지가 쌓였다. 아름다운 그 집과 마을은 이제 내 기억 속에만 있다. 잠깐 눈을 감은 사이에 아주 소중한 것을 빼앗긴 느낌이다.
이 상실감은 처음이 아니다. 내가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살았던 마을이 도로 개발로 헐리고, 하천 복개 공사를 한 것이 5년 전이다. 포크레인에 허물어진 빨간 벽돌담은 숨바꼭질하다가 앞니를 깨트린 곳이고, 시멘트로 편평하게 매워 놓은 언덕은 두발자전거 연습을 하던 곳이다. 주차장이 된 놀이터는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미끄럼틀, 그네 등을 사다 만든 곳으로 나와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그러나 이제 그 마을을 지나며 예전 집 자리를 가늠하기도 어려워졌다. 올해 마을은 공원 조성 때문에 통째로 사라질 예정이다. 나는 그나마 남은 마을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남기려 사진기를 들었다. 집을 나서는 나에게 엄마는 젊은 애가 뭘 벌써부터 새로운 걸 싫어하느냐고 말했다.
70, 80년대의 촌스러운 특징 같았던 개발 욕심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시골 마을까지 무분별하게 들이쳤다. 나는 내 환경의 소중함을 깨달을 시간이 없는 이 빠른 변화가 야속하다. 무엇이 언제 내 동의 없이 사라질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것이 싫다. 굽이쳐 흐르던 강들과 강정처럼 내가 손 쓸 수 없이 망가지는 풍경들이 늘어갈 때 무력하다.
그것들이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추억과 맞바꿀 만큼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 마음 아픈 풍경이 늘어나고 있다.
△ 박 부장은 2011년 우석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한후 2012년부터 우석대 신문 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