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스터 고 (드라마/ 132분/ 12세 이상 관람가)
- 고릴라 '링링'의 프로야구 입단기
고릴라가 이제는 야구까지 한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올라타고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한국영화 최초로 전체를 3D로 촬영한 영화 '미스터 고'는 시민들에게 친숙한 존재로 다가온다.
스크린 위의 고릴라가 CG(컴퓨터그래픽)로 만들어진 '그림'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다 보면 어느새 빠져든다.
한국영화 최초로 CG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기대를 모은 '미스터 고'는 컴퓨터 기술로 창조해낸 캐릭터를 살아 숨쉬는 존재로 믿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선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뭔가를 말하는 듯한 고릴라의 눈동자와 표정은 사람 같은 친구로 느끼게 한다. 이 고릴라가 결국 관객을 웃기고 가슴 찡하게 하는 주연배우로서의 연기를 제대로 해냈다.
전작 '미녀를 괴로워', '국가대표'에서 보여줬던 김용화 감독 특유의 코미디 감각도 여전하다. 주연배우 성동일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비롯해 곳곳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조연 배우들의 감초 같은 연기가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이야기는 이렇다. 룡파 서커스단의 고릴라 '링링'은 야구를 좋아하는 단장 밑에서 어릴 때부터 야구를 배워 서커스단의 명물이 됐다.
한때 잘나가던 서커스단은 단장의 무리한 투자로 서커스단이 재정 위기를 맞고 설상가상으로 지진까지 일어나 단장이 세상을 떠난 뒤 손녀인 웨이웨이(쉬자오 분)가 서커스단의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에 시달리던 쉬자오 앞에 어느 날 한국 프로야구계의 최고에이전트 성충수(성동일)가 나타난다. 한국에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설득하는 성충수의 말에 넘어가 쉬자오는 링링과 함께 한국으로 온다.
한국의 프로야구 구단들은 링링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두고 설왕설래하지만, 결국 성충수의 공작으로 링링은 두산에 입단하게 된다. 실전에 투입된 링링은 홈런을 쳐대며 상대 선수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 팀은 승승장구하고 링링의 인기도 날로 높아진다.
하지만, 45세의 나이로 인간으로 따지면 환갑줄이나 마찬가지인 링링의 몸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동시에 중국 사채업자들의 협박도 날로 심해진다. 링링과 웨이웨이의 운명 앞에 큰 시련이 닥친다.
영화는 특히 한국영화의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한국영화 최초로 전체를 3D로 촬영한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3D 영화들에 비해 어색하거나 피로한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고릴라 얼굴의 생생한 움직임과 수만 가닥 털을 한 올 한 올 살려낸 CG 기술도 빛난다. 빠르게 움직이는 동작에서는 이따금 애니메이션 같은 이물감도 들지만, 전체적인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편이다.
■까 밀 리와인드 (드라마/ 115분/ 15세 이상 관람가)
- 팍팍한 현실을 벗어나 행복한 과거로의 외출
만약 과거의 한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현재의 내 모습을 조금은 바꿀 수 있을까.
지루하고 팍팍한 현실에 치이다 못해 지칠 때면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예전으로 훌쩍 돌아가 인생의 꼬인 실타래를 풀고 싶기 마련이다.
노에미 르보브스키가 감독·주연한 영화 '까밀 리와인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 슬립을 토대로 한 영화다.
무명 배우인 40살 '까밀'(노에미 르보브스키 분)은 늘 술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산다. 지겹고 지루한 일상이 이어진다. 심지어 한때는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남편 에릭(사미르 구에스미)은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그녀를 떠나간다.
연말 파티장에서 새해가 되는 순간 쓰러진 까밀이 깨어난 곳은 다름 아닌 병원이다. 그것도 16살이던 시절이다.
관객이 보기에 겉모습은 40살의 까밀 그대로지만 부모도, 단짝 친구들도, 첫사랑 에릭도 모두 그녀를 16살의 까밀로 대한다.
까밀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를 다시 만나게 된 이 상황이 얼떨떨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특히나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뜬 엄마에게 자신의 임신 소식과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이 순간이 소중하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에게 불쑥 마이크를 들이대며 목소리를 녹음하기도 하고 절대로 죽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열렬히 사랑했지만 끝내 자신을 떠나간 첫사랑 에릭과의 만남은 까밀이 바꾸고 싶은 과거지만 까밀이 피하려고 할수록 에릭은 까밀에게 다가온다.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까밀은 과거를 바꾸려 애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밤새 야한 얘기를 하거나 담을 넘는 등 하나둘씩 즐거운 추억거리를 쌓아간다.
영화는 까밀을 통해 팍팍한 현실을 되돌아보고 그동안 잊고 지낸 과거 어느 한순간의 소중한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게 도와준다.
영화 '써니'와 '과속스캔들'에도 삽입된 '비너스'(바나나라마)와 '워킹 온 선샤인'(카트리나 앤드 더 웨이브스) 등 디스코풍의 인기 팝도 대거 등장해 귀를 즐겁게한다. 80년대 복고스타일의 소품은 동시대를 지나온 관객에게 소소한 추억을 전한다.
실제로 40대 후반인 노에미 르보브스키는 자칫 무리일 수도 있는 16살 소녀 까밀의 모습을 발랄하고 유쾌하게 그려내며 농익은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는 작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주간 최고 프랑스 영화상을 수상했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버라이어티 피아자상을 받고 세자르국제영화제에서 13개 부문에노미네이트되는 등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