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에서 2주 이상 버티면 반타작에 성공한다는 말이 실감나는 주말이다. '감시자들'이 3주 동안 꾸준히 상영관을 점유하고 '레드 더 레전드'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미스터고'의 부진이 눈에 띈다. 그 사이 미스터고의 빈자리를 다른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메웠다.
■ 설국열차 (액션/ 125분/ 15세 이상 관람가)
- 강요된 질서를 부숴라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낸 '설국열차'의 세계에는절망과 희망, 비관과 낙관이 교차한다.
감독은 멸망한 세계, 생존자들만이 남은 '노아의 방주'인 열차 안에 세계의 축소판을 그려놓고 이 열차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묻는다. 강요된 질서에 순응하며 영원히 순환할 것인가, 아니면 닫힌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기획 의도답게 영화에는 한국적인 드라마나 소소한 잔재미가 별로 없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바깥 세상과 숨막히는 질서를 강요하는 기차 안의 잿빛 꼬리칸, 그 경계를 뛰어넘으려는 사람들의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이 이 영화의 색채를 압도한다.
관객은 이 세계 안에서 꼬리칸의 사람들과 앞으로 나아가며 전복의 쾌감을 맛보다가 마지막에 맞닥뜨리는 묵직한 질문에 스스로의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영화는 2014년 빙하기를 맞은 인류의 위기에서 출발한다.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이 특수 화학성분을 살포하면서 대기에 이상 반응을 일으켜 지구가 얼어붙는다.
대부분의 인류가 죽고 남은 사람들이 엔진이 영원히 멈추지 않는 유일한 생존공간인 설국열차에 올라탄다. 하지만, 이 세계는 엄격한 계급과 질서로 움직인다. 꼬리칸에 사는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군인들의 강한 통제 속에 매일 자기 전에 '점호'를 해야 한다. 이들이 하루 세 끼 먹는 음식은 단백질 덩어리로 불리는 어두운색깔의 네모난 젤리가 전부다.
군인들은 갑자기 나타나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을 데려가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을 데려가기도 한다. 아이를 뺏기지 않으려고 부모들이 반발하자, 총리 역할을 하는 '메이슨'(틸다 스윈튼 분)이 나타나 일장 연설을 한다.
설국열차 안에서는 질서와 균형이 가장 중요하며 각자 기차에 올라탄 위치대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질서에 따르지 않는 자에 대한 보복은 가혹하다.
이런 삶에 진저리가 난 '커티스'(크리스 에번스)는 정신적 지주인 '길리엄'(존허트), 친동생 같은 '에드가'(제이미 벨), 아이를 잃은 엄마 '타냐'(옥타비아 스펜서) 등과 함께 반란을 준비한다. 그리고 때가 됐다고 느꼈을 때 군인들을 제압하고 앞 칸으로 나아가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열차의 설계자인 남궁민수(송강호)와 그 딸 요나(고아성)를 감옥에서 꺼내 닫힌 문을 더 열어젖힌다. 진압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
영화는 앞으로 나아가는 커티스의 눈을 통해 관객이 함께 설국열차의 세계를 탐험하게 한다. 봉 감독이 설계한 설국열차의 세계는 원작보다 훨씬 다채로운 풍경이며, 때로는 약간의 위트까지 더해져 있다. 천의 얼굴을 지닌 듯한 틸다 스윈튼을 비롯해 할리우드 명배우들의 연기 열전은 이 영화를 '글로벌 영화'답게 만든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초·중반부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도 큰 볼거리다. 도끼를 들고 뒤엉켜 싸우는 장면은 설국열차 안의 처절한 정서를 극대화한다.
■ 더 울버린 (액션/ 128분/ 15세 이상 관람가)
- 일본서 싸우는 휴잭맨
초능력을 가진데다 죽지 않는 돌연변이 울버린이 일본에 갔다.
'더 울버린 3D'는 영생(永生)을 괴로운 짐으로 여기던 울버린(휴 잭맨 분)이 일본에서 죽음을 마주하고 자신의 존재를 다시 긍정하게 되는 이야기다.
'엑스맨'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을 배경으로 울버린이 사무라이·야쿠자들과 벌이는 액션, 젊은 일본 아가씨와 벌이는 로맨스 등으로채워져 있다.
영화보다는 만화 같은 느낌이 더 강하고 별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와 전형적인 인물 캐릭터들의 조합은 보는 사람의 공감과 몰입을 어렵게 한다. 블록버스터라 하기에는 액션이나 볼거리도 특별한 게 별로 없다. 울버린 외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본인 3대 직계 가족이 욕망을 채우려고 서로 죽이려는 관계는 한국의 정서에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휴 잭맨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울버린을 연기하는 그의 탄탄한 근육과 야성미, 인간적인 면모에 마음을 뺏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가 시작되는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말미 일본의 나가사키. 원폭이 투하되던 그 순간, 병사 '야시다'는 울버린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세월이 흘러 야시다는 노환으로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다며 울버린을 찾는다.
사랑하던 여자 '진'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고 영원히 죽지 않는 자신의 삶을 괴로워하던 울버린은 야시다의 초대에 응해 일본에 간다. 야시다는 젊은 시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울버린에게 영생의 삶을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날 밤 야시다는 세상을 떠나고 그의 유언장 내용에 따라 손녀인 마리코(오카모토 타오)가 회사를 물려받게 된다. 마리코의 아버지 '신겐'(사나다 히로유키)은 자신을 배제한 아버지에게 앙심을 품고 딸인 마리코를 납치해 회사를 손에 넣으려는 음모를 꾸민다.
야시다의 장례식장에 신겐이 고용한 야쿠자들이 들이닥쳐 마리코를 잡아가려 하고 울버린이 야쿠자 일당에 맞서 마리코를 지킨다. 나가사키에 있는 야시다 가문의 별장으로 따라간 울버린은 마리코와 며칠간 이곳에 묵게 된다. 그 사이에 두 사람은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고 울버린은 마리코를 끝까지 지켜주기로 한다. 하지만 야시다의 숨은 야욕이 점점 드러나고 그의 계략으로 울버린은 죽음의 위기에 놓인다.
'나잇&데이' '3:10 투 유마' '아이덴티티' 등을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