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슴에 오십대의 마지막 불이 꺼지는 여름이었다.
감성이 메말라 비틀어 질 때마다 추억의 가방을 뒤적여 하나씩 깨물어보는 것이 여행이다. 그 날도 멀리 시골집을 예약하여 머물기로 했다.
아직도 솥단지 걸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사는 동네. 노을이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보다 개가 더 많은 동네. 저녁 무렵 이곳저곳에서 연기가 났다. 벽의 틈새를 타고 흐르는 매콤한 연기를 마시며 할머니는 우리에게 시골밥상을 차려주셨다. 손톱 사이로 김치물이 곱게 든 손으로 된장과 호박잎, 보랏빛 가지나물과 황석어 젓갈에 풋고추를 넣은 맛깔스런 밥상.
시골의 아침은 햇살이 맑고 투명하여 온 세상이 은빛 꽃으로 활짝 피었다.
사람과 기계의 소음을 벗어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동안 우리를 괴롭혔던 요인들이 무엇이었을까? 그 사람만 없었으면 살 것 같고, 그 일만 없다면 어렵고 힘들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밀림의 왕 사자한테도 괴롭히는 적수가 있었다.
사자는 먹이를 먹으면 끝까지 먹어 위를 가득 채운다고 한다. 그리고 소화가 될 때까지 보름정도 깊은 잠에 빠진다. 과식을 하고 바로 눕게 되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화불량에 걸려 나중에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되지만 사자는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 바로 똥파리가 사자의 귀, 다리, 배, 머리 등 여기저기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데 사자는 자면서도 본능적으로 온몸과 다리, 꼬리를 끊임없이 흔들다보면 저절로 운동이 되어, 만족스러운 소화까지 된다고 한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그들이 지금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다. 그들 덕분에 내 삶이 맑아지고 새 살이 찬다면 똥파리 같은 존재가 있어도 가슴 아파하지 말고 그들에게 다가서며 따뜻한 손길을 전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소명을 잊지 말고 기쁨을 전달해야한다.
이번 여름은 생각 버리기 연습을 하며 살아야겠다. 정형화된 삶보다는 조금은 흐트러지고 약간 너트가 빠진 그런 날도 필요하다.
특별한 날에 마시라고 rose sparkling wine(로제스파클링와인)을 선물로 주고 간 사람이 있었다. 탄산 같은 기포가 있었고 장미 빛깔 때문에 로즈라고 하는데 화이트 와인과 레드와인의 중간색이었다. 오늘 같은 날에는 여자들이 즐기기에 달콤한 맛과 향이 있어 아주 좋았다.
시각적으로 환상적인 색상과 후각반응이 빠르게 다가와 여름철 모든 향기를 한 병에 담은 향기였다. 나의 똥파리는 누구였을까?
여행은 그 사람을 변화 시키는 충만한 에너지가 있다. 일상적 생활에서 웃고 재미난 시간보다는 졸고 있는 감정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활력소를 찾으려고 많은 사람들은 가방을 챙기고 있다.
섶 다리가 있는 작은 마을, 고추 말리는 두 노인이 사는 방안에 들어가 눈을 감지 않아도 잘 수 있는 그런 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싶다.
자다가 창문에 스며든 별빛을 마시고 흠뻑 취해 옆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떠나고 싶다. 오십대는 흔들리는 바람, 오십대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이기에 가장 아름다운 나이인지도 모른다. 오십대는 바라보는 것 마다 모두 아름답다. 불타오르는 오십대에 떠나자.
여행은 눈과 마음을 호강시켜주기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한없이 그리움으로 기다렸던 사람과 탁월한 이야기꾼이 아니어도 같이 떠나고 싶다. 똥파리도 같이
- 수필가 안영씨는 1997년 ‘문예사조’로 등단. 수필집 ‘내안에 숨겨진 바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