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한 바람아 불어라

▲ 박종윤

요즈음 이상기온으로 긴긴 땡볕과 일부 지역의 집중 폭우로 올여름은 불쾌지수를 더하여 잠을 설치게 한다. 여기에다 사초(史草)실종사건, 개성공단 협상 난항, 방학을 이용한 해양극기 훈련 받던 고교생 5명의 익사, 명 피디인 김종학씨 자살 사건 등등은 더욱 여름을 빨갛게 색칠했다.

 

이런 때 시원한 한 가닥 청량감을 주는 소식이 없나 몹시 기다려진다. 며칠 전, 어느 중앙지 얼굴화면에 4단 크기의 ‘세상에 첫 선 보인 미래의 영국왕’이라는 막 태어난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증손자 아기 사진이 실려 있었다. 아직 눈을 뜨지 않고도 앞으로 펼쳐질 영국은 환호를 보낼만한 아름다운 나라라고 확신한 걸까. 손뼉을 치듯 두 손을 벌리고 두 눈을 꼭 감고 강보에 싸여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입방아 대신 글방아로 사는 이들은 벌써부터 미래를 점치기에 분주했다. 물려받을 재산이 10억 달러이며, 왕위 서열이 3위이기에 2082년 쯤 되어야 왕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명문학교에 보내 성인으로 키우기 위해 100만 달러가 들어갈 거라고 미리 계산도 해본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건너온 소식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무더위를 식혀주는 한 올의 낭보로 들렸다. 기쁜 소식이 메말라 버린 우리생활에 한 바탕 쏟아지는 소나기는 못될지라도 스쳐지나가는 한 줄기 빗방울은 되었다.

 

친목 모임에서는 흔히 3가지 금기사항이 있다. 그중에 ‘정치’도 한 몫 차지한다.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하기에 누구나 관심이 많은 분야다. 다양한 얼굴 생김새처럼 생각이 모두 다르기에 섣불리 그 이야기를 끄집어 낼 때에는 큰소리가 오고가고 우정에 금이 가기에 십상(十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의 질과 행복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절실하고 중요하기에 관심 뒷전에 둘 수만은 없다.

 

나는 가끔 감칠맛 나는 삶, 상큼한 생활은 없나하며 생각을 그려 보곤 한다. 국회의원은 몇몇 비례대표를 제외하곤 각 지역구에서 뽑은 국민의 대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들에게 거는 우리들의 기대는 문서에 기록된 임무보다 더 높고 크다. 국민의 질 높은 삶, 행복문제 만큼은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밤새워 여야를 떠나 눈알에 핏발이 서도록 토론하는 문제 해결의 모습. 회기 중에는 자리를 꽉 채워 한 건이라도 국민 복리(福利)문제를 소홀이 다루지 않는 성실의 모습. 대외적으로 국익문제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내 집안의 문제인양 만사를 제치고 똘똘 뭉쳐 대처하는 의지의 한국인 모습. ‘당리당략’보다 한 걸음 앞서 국민의 입장을 생각하는 큰 가슴의 모습. 국민의 혈세가 삐뚤어진 틈새로 새어 나가지 않나 지키는 파수꾼의 모습. ‘개천에서도 용이 예전처럼 다시 태어 날 수 있다’는 젊은이들의 어려운 꿈을 접지 않도록 도와주는 용기의 모습. 국론 분쟁이 요동치고 휩싸여 국민들의 가슴이 콩닥콩닥할 때 초동(初動)에 불을 끄는 소방서 아저씨의 모습. 대통령을 국가 원수(元首)로 인정하고 통치하는데 밑받침을 튼튼히 해주는 한국인의 긍지 높은 수준의 모습. 틈나는 대로 서민의 아픈 삶의 현장을 돌며, 난제를 풀기위해 함께 고민하는 푸근한 인정의 모습.

 

이런 모습의 정치인들이, 국회의원들이 그득한 살판나는 우리나라 모습을 그려보며, 손에 든 부채를 내려놓고 더위를 식히고자 한다.

 

* 수필가 박종윤씨는 1993년 '수필문학'을 통해 등단, '제20회 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