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기념일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정읍 조소마을의 전봉준 장군 고택에 가면 다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장군의 초상을 만날 수 있다. 영겁의 피안을 응시하는 듯 먼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시선은 격변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살다간 혁명아에게는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습이다.

 

저런 눈으로 어떻게 완고한 봉건질서를 깨뜨리려 했단 말인가? 저런 눈빛으로 어찌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외세에 항거하고자 분연히 떨쳐 일어선 농민군들을 호령할 수 있었을까? 그 이후에 진행될 뒤틀림의 역사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일제와 그 이후 독재정권들에 의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사람들에 의해서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축소와 전유(專有)의 왜곡을?

 

역사는 언제든 왜곡될 수 있다. 혁명의 대의는 현실정치 속에서 소실되게 마련이고 성공한 혁명조차 '죽 쑤어 개 주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혁명정신에 가장 걸맞지 않은 박정희 전두환 두 독재자에 의해 조성된 황토재 기념탑과 기념관이 이를 웅변해주고 있다. 그것도 부족하여 다른 주요 유적지가 허허 잡초 투성이인 마당에 또 다른 기념관을 하필 그곳에 덩실 세운 것도 그렇다. 그곳에서 혁명정신과 무관한 사람들이 임원이랍시고 저지른 최근까지의 행태들은 더 말할 게 없는 일이고.

 

왜곡은 혁명 120주년을 앞두고도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한 대학 연구실에 방치되어 있던 농민군지도자 유해는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또 다른 형태로 유기되어 있다. 아직도 지역이기주의에 발목 잡혀 혁명기념일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변화에 획기적 전기였으며 우리나라 근대 민족민주운동의 시발점이었던 이 역사적 사건을 조그만 고을의 일로 기리려는 왜곡은 두 번째 육십갑자를 앞두고도 끈질기게 진행 중이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농민혁명이 어느 특정지역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과거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그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려는 음모가 치열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 험한 시절에 역사를 지킨 공은 가상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공을 내세워 역사왜곡을 자행하는 것은 그 공조차 까먹는 일이 될 수 있다. 그 역사적 중요성에 공감하여 일본인 영화감독이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고 나서는 판국에 우리가 기념일 합의조차 못하고 있어서야 어디 될 말인가? 전봉준장군의 처연한 눈빛을 제대로 대면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바로 세워야 할 일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