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병을 치유하는 특효약은 예술

▲ 조민철 전북연극협회장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는 무엇일까라는 앙케트의 결과는 'mother'란다. 유감스럽게도 'father'는 70위 안에도 없다. 1945년 해방둥이 故 황수관 박사가 엄마 뱃속에서 있을 때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 되었다. 그 순간 아버지는 재빨리 혼자 피하면서 '빨리 따라와!' 했는데, 어머니는 임신 9개월째인 몸으로 두 딸을 안고 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었단다. 그게 바로 어머니다. 품고, 안고, 자신이 망가져도 자식을 끝까지 지고 가는 게 어머니의 사랑 방식이다.

 

5.16 이후, 군사문화는 절대복종을 충효로 절묘하게 포장하여 한 시대를 관통하는 사고의 근간이 되게 하였고 엄격한 위계질서가 집단 유지의 유력한 계율이 되게 하였다. 이제 그것은 자유와 자율을 갈망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퇴색된 듯 보이지만 해당자들은 받은 교육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거기에 더해 이전 시대에는 없던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자신의 아이들을 보며 당황해하고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행착오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흥미나 호기심의 발현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입시지옥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겨우 주어지는 학교와 학원의 틈새시간에 가능한 것이라곤 인스턴트식품으로 배를 채우며 감시와 보호수단으로 주어진 스마트폰으로 하는 게임이고, 제어 불가능한 인터넷이고,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분풀이 하듯이 달아대는 악성댓글 뿐인 것이다. 일상의 규제와 불만을 해소하는 그들의 유일한 배설구가 어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은 큰 문제이다. 이제 진정 무엇이 시대에 필요한 기준인지, 올바른 가치인지 스스로 따져 물어야할 시기가 되었다.

 

얼마 전, 현지공장 설립과 판매증가 등으로 미국에 연착륙한 듯 보이는 현대자동차가 상하관계의 경직성, 강요하는 회식 등으로 현지직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지나친 교육열과 부모들의 한풀이식 교육 방법이 더해져 성과지상주의자들로 만든 것이다. 다르고, 튀면 문제라는 기성세대의 나쁜 학습효과가 더해져 미래의 한국 역시 몰개성의 사회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한 배를 탔다고 같은 방식을 강요하지 말고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길을 찾게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효약인 예술문화를 접할 시간을 주어야한다. 장르를 제한하지 않고 문화 접촉의 기회를 정기적으로 주면 자살과 폭력, 왕따 문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예전처럼 일률적인 단체 동원이 어렵다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쉬어갈 수 있는 시공을 확보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전히 '유익하고 유용한 결정을 내렸으니 따라와!' 하는 아버지 방식의 사랑이 아니라 조금은 번거롭고 인내가 필요하더라도 이 불운한 흐름을 끊을 유일한 방법은 자기희생을 동반한 어머니의 사랑이고 그의 다른 이름이 바로 예술이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나의 공연예술의 창구는 반강제성을 띤 단체관람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신선한 문화충격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이런 건전한 일탈을 깨어있는 부모들의 자녀나 전공 희망자 등 극소수만 누리고 있는데 모든 것을 강제했던 과거는 문화예술 감상을 장려했는데 상당한 자유를 획득한 오늘은 오히려 그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으니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감동은 따로 발생하지 않는다. 현상을 제대로 진단하고 기성세대의 희생이 전제되어야 진정성이 담보 되고 그 후로 사회적 동의가 가능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기회와 선택권을 넘기는 용기를 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