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伏)더위 단상

태양을 구워 먹어도 시원치 않을 폭염. 일주일 전 입추가 지났는 데도 곳곳에서 수은주가 사상 최고로 치솟고 있다. 섭씨 33도를 넘으면 폭염주의보, 35도를 넘으면 폭염경보가 발령되는데 이런 폭염특보가 계속되고 있다. 폭염에 목숨을 잃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살인 더위다.

 

어제가 말복(末伏)이다. '삼복더위'라는 말처럼 1년 중 가장 더운 기간이다.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에 따르면 복날은 '서기제복(暑氣制伏)'의 뜻이 있다. 여름의 더운 기운(暑氣)을 제압, 굴복(制伏)시킨다는 의미다. 복(伏)자엔 엎드리다, 굴복하다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더운 기(氣)를 이길려면 체력이 튼튼해야 한다. 복날에 삼계탕 보신탕 같은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는 까닭이다. 伏(복)자에 犬(견)자가 들어 있는 것도 우연치 않다. 개고기 애호가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이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의 개고기 예찬론은 흑산도에 유배중인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 잘 드러나 있다. "섬 안에 산개(山犬)가 천마리도 넘을 텐데 저라면 5일에 한마리씩은 삶아 먹겠습니다…1년 365일에 52마리의 개를 삶으면 충분히 고기를 계속 먹을 수 있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세상에 1년에 개 52마리를 먹는다니 지독한 개고기 마니아가 아닐 수 없다. 다산은 "(형님이) 보내주신 편지에서 짐승고기는 도무지 먹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어찌 생명을 연장할수 있는 도(道)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유배중에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형님을 한탄하기까지 했다.

 

무덥고 무기력하면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게 느껴지는 법. 기운을 돋구고 폭염을 슬기롭게 이겨낼 지혜가 필요한 때다. 조선시대에도 어른들은 술과 음식을 마련해 산간계곡으로 들어가 하루를 즐겼다.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냈다. 부녀자와 아이들은 수박 등 과일을 먹으며 물놀이를 하는 것으로 더위를 피하고 지친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예나 지금이나 피서방법은 똑같았던 모양이다.

 

당분간 폭염이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1994년 이후 19년 만에 최고의 더위다. 복(伏)은 제 주인 앞에서 벌렁 드러누워 있는 개처럼 낮게 엎드리라는 의미다. 폭염을 탓한 들 나만 스트레스 받는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