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중 한 명인 A는 우스갯소리로 "알바로 300만 원을 벌었는데 떼인 돈이 100만 원은 되는 것 같아"라면서도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친구가 오래 일한 패스트푸드 가게의 점장은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자주 임금을 주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와 성적 사이를 늘 위태하게 줄타기하는 그 친구는 제대로 된 경험도, 공부도 열심히 하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빚 없이 학교에 다니는 것에는 사뭇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학자금 대출 역시 취직하면 갚아나가야 하는 짐이라는 이야기다.
90년대에 태어난 지금 20대,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 IMF를 겪었다. 많은 수가 가세가 기우는 모습을, 부모님의 한숨과 눈물을 보고 자랐다. 돈이 삶을 휘두르고 가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가슴에 멍 하나씩을 가지고 성인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불행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낡은 불행을 현재 삶과 비교하며 자수성가의 증표로 쓰지 않는다. 대신 일찍 철이 들었다. 청년이 어른이 되는 기존의 과정은 열정이 꺼진 자리에 안정이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열정을 미뤄두고 빠른 안정을 택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일탈은 하지만 도전은 하지 못하고 무기력을 쉽게 학습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의 유행, 공무원 시험 응시율이 높아지는 현상이 이를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안정은 경제적 안정에 쏠려 있다. 합리를 추구하고 실속을 따지는 일에 능숙하나 쉽게 속물근성에 물들었다. 우리는 안정을 바라기 때문에 때때로 착취, 이용당한다. 대학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거마 대학생 사건 같이 굵직한 일은 물론 꾸준히 발생하는 대출 사기와 아르바이트 임금 문제도 있다. 코 묻은 돈을 받고 값싼 위로를 파는 데에 청춘은 아플 때나 쓸모 있다.
지식인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대학 졸업장은 사회인으로서 최소한의 구실을 위한 마지노선이다. 성적은 기본이고 자격증, 외국어 능력, 나아가 독창적인 개인 스토리텔링까지 원하는 회사가 늘어간다. 어디 하나 안 힘든 일이 없다.
A는 지금 조기 취업을 했다. 회사는 안정적이고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순탄하고 괜찮은 삶이라는 주변의 평가와 부러움의 시선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 친구 역시 일이 즐겁고 스스로 많은 돈을 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월급으로 적금을 넣고 물건을 사는 일에 금세 염증을 느꼈다. 어느 날은 불쑥 인생이 재미없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안정은 단조롭기 마련이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많은 수의 공감을 받은 글이 있다. 즉흥적으로 떠날 수 있는 건 청춘이 아니라 부모님의 재력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무기력하게 불행을 현재진행형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스스로이다. '내일러'들 역시 같은 시대를 통과해 온 20대다.
나는 청춘을 돌볼 줄 아는 그들이 더 좋은 어른이 될 거라 믿는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배낭 대신 시급을 택하는 한 청춘은 유예되거나 돌이킬 수 없게 낭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