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눈초리

여러 신문들의 1면 사진은 인물은 한 사람이었으나 얼굴 표정은 제각각 이었다

▲ 박형신 우석대신문 문화부장
로버트 카파 사진 전시회에 다녀왔다. 그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다양한 전쟁을 사진 기록으로 남기고 전쟁 현장에서 죽은 종군기자다. 한 군인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을 찍은 사진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은 유명하다. 그의 사진은 이제 저널리즘을 벗어나 작품으로써 전시된다. 전쟁 사진들을 본 사람들은 공포, 연민, 분노 등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낀다. 이는 프란시스코 고야나 파블로 피카소의 전쟁 그림을 볼 때 상상력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보다 농도가 짙다. 사진은 지금 보는 것이 가공하지 않은 진실이라고 착각하게 한다. 단순히 생각할 때, 그림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이미지이고 사진은 기계로 '찍어서' 인쇄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림은 전쟁의 고통과 폐허를 재배치하고 종합한다. 예를 들어 고야의 그림 속 프랑스군은 스페인 사람의 시신을 나무에 걸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반면 사진은 카메라 렌즈 앞의 피사체를 그대로 가져온다. 그러므로 사진은 이미지의 내용을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사진이 그림과 달리 무엇을 증명해 준다고 여기는 이유다. 전시회 액자에 걸려 있어도 여전히 사람들은 사진 역시 창조자가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사진을 손보지 않았다면 사진 자체가 말하는 무엇, 또 사진을 보는 사람이 느끼는 무엇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은 아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구도를 잡아야 하며 피사체를 정해야 한다. 구도를 잡고 무엇을 찍을까 고려할 때 그 밖의 것들은 배제되는 것이다. 그림과 같이 사진에는 찍는 사람의 의도가 포함된다.

 

피사체가 어떤 포즈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찍었다는 사진이 평범해 보이지 않을 경우, 사진은 보는 사람들을 자극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라고 강요하는 모양이 된다. 특히 사진이 보는 사람의 행동과 가치관을 조작할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사람들은 신문의 글자보다 사진에 먼저 집중하며, 때때로 사진을 통해 현실을 훨씬 더 잘 보게 된다고 느낀다. 실제로 보통보다 사물을 더 잘 보이게 해주는 것은 사진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사람들의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죄를 지었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사진 중 좀 더 추악한 것을 선별해 싣는 일은 불손하다. 죄와 상관없는 부분을 드러내고 선입견을 이용해 낙인찍기 때문이다.

 

지난 8월 30일, 다양한 신문들의 1면 사진이 그러하다. 1면을 장식한 인물은 한 사람이었으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각 신문의 이석기 의원은 웃고 있었고, 삿대질하고 있었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곁눈질하고 있었다. 내란죄 혐의를 받고 증거로 대화록이 공개된 상황에 지을 표정은 아니었다. 웃는 사진의 경우, 그의 말대로 내란죄 혐의가 음모이든 국정원이 주장하는 대로 실제 내란을 꾸몄든 어느 쪽으로 보아도 괴이했다. 언론이 특정 인물과 단체의 이미지를 몰아가고, 거대한 흐름의 중심을 취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매체와 도구를 바꾸어가며 존재했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이미지 노출, 사생활 침해,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이용하는 경우 등의 윤리적 문제점들 역시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비판 없이 수용하고 의도를 의심치 않던 태도를 돌아봐야 할 때이다. 사진은 결코 현실의 객관적 반영이 될 수 없다. 의도적으로 사진이 표현하지 않은 부분을 탐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