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103주년을 맞은 무주초등학교(교장 조현종)는 무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명문학교 지존의 자리를 철옹성처럼 굳게 지켜왔다. 무주군 무주읍에 위치한 무주초등학교는 무주중앙초등학교를 비롯해 용포·장백·내도·가옥·대차·오산분교장의 전신으로 학교의 산파역을 해왔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 교장의 부임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역사도 존재했지만 첫 한국인 교장으로 부임한 임종성 전 교장과 그의 바통을 넘겨 받은 김환형 전 교장이 장기 재직하면서 학교는 안정화 궤도에 올랐다. 학생수 급감으로 시골학교의 명운이 엇갈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무주초등의 아성(牙城)이 지켜질 수 있을 지 졸업생들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 교훈 등 전통을 지켜온 학교
한때 변화를 주도한 무주초등은 이젠 전통에 충실한 학교로 정평이 났다. 1947년 김환형 전 교장이 제작한 교훈이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유일한 학교다. 교훈인 '고운 마음씨, 깨끗한 맵시, 뛰어난 슬기'를 가리켜 조용현 교장은 "시대의 흐름을 뒤쳐진다고 여길 법한 슬로건이지만 지금껏 학교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일관된 교육 신념과 철학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꽃이름을 딴 반도 그대로다. 학년별로 국화·난초·매화·백합·장미·옥잠·석류반 등 7개 반이 있었으나 최근엔 학생수가 줄어 국화·난초반만 운영 중이다.
반면 무주초등은 학업열로 시대를 앞서갔다. 1960년대 시작된 수준별 수업은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한 자극제가 됐다. 동문들은 "무슨 반이었느냐에 따라 성적을 가늠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한 반에 60~70명 씩 꽉 찬 학생들을 감당 못해 뒷동산 야외수업을 간다든가, 일주일 중 하루는 오전·오후반 수업을 했을 만큼 이 명문 초등학교는 한때 학생들로 차고 넘쳤던 시절이다. 특히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은 운동장이 인산인해가 됐다. 백경태 도의원은 "분교 학생들까지 운동장에 꾸역꾸역 몰려오는 통에 도시락을 들고 뒤늦게 찾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찾지 못해 쫄쫄 굶기도 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 정계 등 우수한 인재 배출도
숱하게 배출된 학생들이 우수한 인재 양성으로 이어졌다. 이 학교 졸업생 가운데는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42회), 장세환 전 국회의원(53회), 김세웅 전 국회의원 및 무주군수(53회), 백경태 도의원(62회) 등 정계 인사가 유독 많지만, 문화예술계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평론가 김환태(9회) 정도에 그친다. 백경태 의원 부자(父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주초등을 졸업한 선후배. 조용현 교장도 무주초등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퇴임을 앞두고 고향에 살고 싶어 이사를 온 경우다. 다른 학교와 비해 총동문회의 활동이 두각을 보이진 않으나, 끈끈한 인연을 앞세워 지난 2010년 백경태 도의원을 주축으로 합심해 100주년 기념탑을 세웠다. 행정구역상 전북에 포함되나 생활권은 충청에 더 가까워 졸업생들이 갈수록 대전·서울로 진학하는 분위기가 안타깝지만 특별한 대안은 없어 보인다.
△ 학습 부진아 줄이기 위한 교육
무주초등은 지난해 도교육청으로부터 '학력 향상형 창의경영학교'로 지정됐다. 기초 학력을 높이기 위한 주제별 연구수업을 바탕에 둔 프로그램 개발로 학습 부진아 등을 줄이기 위한 프로젝트. 조 교장은 "학습권이 소외된 학생들이 갈수록 눈에 띄게 줄고 있다"고 봤다.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자기주도적 학습 방법, 사이버 가정학습(전북 e스쿨)의 연계, 독서를 통한 글쓰기 교육 등도 학습 능력을 높이기 위한 포석이다. 학교 폭력·왕따 문제 해결과 같은 인성 교육을 특히 챙기는 조 교장은 "학교 폭력·왕따 등과 같은 문제가 불거지게 된 근본 이유는 공동체 문화가 깨진 탓"이라며 "이전엔 동네별로 학생 등학교를 전담하는 애향단이 있을 정도로 합심하는 교육 공동체였다. 공동체 문화의 복원이 인성교육의 첫 걸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