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령사라 불리는 귀뚜라미와 5년 동안 땅속에서 살다가 한 달가량 울다 죽는다는 매미의 공통점은 두 가지. 수컷이라는 점과 울음소리가 모두 짝짓기를 위한 구애 행동이라는 사실이다. 즉 수컷들이 암컷에게 건네는 '종족 보존용 커뮤니케이션(소통)'이다. 다행히 인간은 말과 글을 만들어 사용하는 까닭에 훨씬 소통이 원활하다. 문자가 생겨나기 전인 선사시대에도 동굴에 벽화를 그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이에게 알렸고 자신들의 삶과 후손의 경고를 커다란 바위에 새겨 놓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다. 물론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한 채 덩그러니 남아있는 고창 고인돌 군락지도 있다. 이렇듯 언어는 석조물로, 벽화로, 문자로, 인쇄술의 발달과 라디오, 텔레비전의 발명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로 이어졌다. 결국 정보화 사회의 최종 목표지점은 남과의 원활한 '소통'으로 귀착된다.
예로부터 의사소통의 매개역할을 담당했던 신분은 남달랐다. 신의 뜻을 인간에 알린 사제(司祭)는 심지어 그 사회를 통치하기도 했다. 그 잔재가 남아 있는 곳이 종교국가로 불리는 중동이다.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의 천년 역사도 사제들의 천국이었으며 흔히 조선시대 언론기관 역할을 담당한 3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도 임금과 얼굴을 맞댔다. 지금의 신문과 방송은 입법, 사법, 행정부에 이어 제4부로 인정받고 있다. 함부로 휘두르면 권력남용으로 지탄을 받게 되지만 제대로 행사하면 언론 고유의 공적인 책무가 된다.
필자의 일터인 방송사도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매시간 권력의 남용과 공적인 책무라는 긴박한 선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파수꾼(watchdog)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최근들어 한국기자협회의 '이달의 기자상'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 방송협회의 다큐멘터리 부문 '방송대상'의 영예를 연이어 안게 됐다. 나름대로 공적인 책무를 성실히 수행한 결과가 풍성한 상으로 보답 받았다. 다시말하면 공영방송이 견지해야할 강력한 감시기능, 그리고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지켜 나가야할 통합기능을 제대로 준수한 결과물로 평가를 받은 것이다.
10월 1일은 KBS 전주방송총국이 전북에 방송을 개시한 지 75년이 되는 날이다. 지역사회에서 감시와 통합기능을 다해온 공영방송의 생일이다. 공영방송(public broadcasting)은 공적인 재원으로 운영되고 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다. 공적인 기능은 전북도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 역할을 말하며 공적인 재원은 바로 수신료다. 소통하는 사회가 되도록 하는 장치가 공영방송이라면 수신료는 그 장치가 원활히 작동하게 만드는 연료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치권이 이해관계에 따라 연료 주입량을 30년 넘게 틀어막으며 공영방송의 작동을 함부로 부리려 하고 있다.
오호 통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