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마을'. 이름도 예쁜 이 마을에 요즈음 전국적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좋은 일로 이름을 알리면 반가울 일이지만, 암환자가 집단 발병하는 마을로 이름을 알리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내기마을은 현재 주민등록상 거주자 52명, 실제 거주자 43명인 아주 작은 마을이다. 그런데 이 얼마 안 되는 주민들 중 2009년부터 폐암 식도암 방광암 판명을 받은 암환자가 12명이나 된다. 그 연유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이런 저런 추측들이 난무한다.
마을의 바탕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움이 더 커진다. 섬진강 유역에서는 가장 넓은 들판을 안고 남향으로 앉은 내기마을은 예부터 터가 좋기로 소문났다. 중종 때 춘추관기사관·홍문관박사·구례현감·성균관학관·봉상시판관을 지낸 안처순이 이 곳 출신이다. 마을에 있는 '영사정'이 그를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다. 안처순은 조광조가 이끈 '사림파'에 가담했으며 왕에게 향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근사록》을 간행하여 보급했던 인물이다. 6.25때는 지리산 자락이 눈에 보이는 거리에 있는 마을인데도 전사자 한명 나지 않았는데, 마을 사람들은 물론 좋은 터에 마을을 세운 덕이라고 여겨왔다.
내기마을은 주변의 넓은 농토와 섬진강을 배경으로 다양한 유적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으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가야계의 대표적 묘제인 수혈식 석곽묘와 백제계의 횡혈식 석실분이 공존하는 고분군도 그렇거니와 인근 산성과 유물 산포지의 특성이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 받기 때문이다. 사실 남원은 내기마을 뿐 아니라 유적 분포의 밀도가 매우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이러한 사실에 귀 기울이고 돋아보게 할 만한 지역의 노력이나 활동은 미진하다. 그 단적인 예가 내기마을이다.
이 마을 주변에는 아스콘공장이며 채석장, 한국전력의 대규모 변전소와 고압 송전탑까지 온갖 시설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있다. 참으로 특별한 예다. 더구나 이들은 모두 유해요소를 방출하는, 주의가 필요한 시설들이다. 이 시설들이 내기마을의 암환자 집단 발병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지난 23일, 마을 지하수에서 방사성물질인 라돈이 기준치의 최고 26배에 이르는 양이 검출됐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곧 정밀역학조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뒷북치는 행정이 한심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원인규명에 나서 하루라도 빨리 마을의 상처가 치유 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