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하거나 마중을 나가지 않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게 세월이요 또한 추석이다.
추석명절은 그야말로 전통문화로서 민족의 대이동을 불러 온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조상흠모와 인간 경애사상 그리고 효사상이 깊다. 이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전통이다.
그럼에도 명절이 모두에게 그저 흔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명절이 더 외롭고, 부담스러운 가정도 적지 않다. 가족을 만날 수 없거나 고향을 찾을 수 없는 경우는 명절이 오히려 고통이다. 명절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들 뿐아니다. 일반 가정의 경우에도 주부들 사이에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명절 준비가 만만치 않은 중노동이다. 오죽하면 명절을 전후해 성형외과와 산부인과 예약 손님이 줄을 선다고 할까.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보일 수 있다. 명절은 말 그대로 오랜 관습에 따라 즐기는, 좋은 날이다. 명절이 문제가 아니라 명절을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문제다.
우리 집에서는 형제가 격년제로 준비하여 명절을 쇤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가정이 시제, 제사, 부모님생일과 회갑, 칠순잔치 등 웬만한 행사는 으레 장손들이 담당한다. 그것이 전통풍습이다.
나는 2남 2녀 중 장남이다. 맏이로서 가정의 큰 행사는 당연히 내가 도맡아 치렀다. 장남인 나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으로부터 귀여움도 더 받았고, 재산도 더 많이 상속받았다.
그런데 동생부부가 20여 년 전부터 우리 형제가 격년제로 명절을 쇠자고 제의했다. 장남이나 차남이나 부모의 자식 사랑은 똑 같았을 것이므로 명절 행사를 형제간에 1년씩 번갈아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장남의 몫으로 여겨 몇 년을 그대로 버텼다. 그 뒤 명절 때만 되면 동생 내외는 거듭 번갈아가며 명절 주최를 요구했다. 장고 끝에 어머님을 모시고 가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회의를 열어 동생 내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새천년 설부터 그렇게 하기로 했다.
홀수 해에는 형 집에서 짝수 해에는 동생 집에서 설과 추석 명절을 치른다. 어느새 올해로 13년째가 된다. 가부장적으로 실행해오던 우리 집 가규(家規)였던 장남 중심의 수백 년 명절 전통의 벽을 깬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모두 어색했지만 10년이 지나니 이제 정착이 되었다.
두 집 가족이 모두 30명인데 이번에는 25명이 모였다. 옛날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었지만 명절 때만은 대가족이 모여 행사를 치른다.
두 집이 돌아가면서 명절을 쇠니 두 집에서 따로 따로 준비하던 경비도 절감되고, 명절증후군도 줄어서 좋다. 특히 형제의 대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단란하고 화합된 분위기여서 참 좋다. 핵가족생활을 잠시 잊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젖어 즐거운 표정들이다. 이것은 동생부부의 제안으로 이루어졌기에 더 없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우리의 명절행사가 앞으로도 대대로 이어지고 후손 모두가 화목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수필가 고재흠씨는 2000년 월간문학 공간으로 등단. 한국신문학 전북지회장·행촌수필문학회장을 지냈으며, 수필집 '초록빛추억'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