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바뀐 고산시장, 푸짐한 드림

▲ 박성일 전라북도 행정부지사
어릴 적, 명절이나 제사를 앞둔 날이면 어머니와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시장에 다녀오곤 했다. 고향인 완주군 화산면에서 가장 유명한 장은 '고산장'이었다. 없는 물건이 없고 맛있는 먹거리가 즐비했던 고산장은 어린 내 눈에 별천지처럼 신기해 보였다. 그 고산장이 되살아났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한달음에 다녀온 것이 지난 9월 4일이다. 새롭게 이전한 고산시장 개장 날엔 몰려드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손님들로 꽉 차는 광경을 보고 나는 무척 놀랐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뭉클했다. 풍성했던 5일장의 추억은 영영 사라진 줄 알았는데, 새롭게 거듭나서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간 고산시장은 터미널과 가까워 고객 유입에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규모가 작고 건물이 낡아서 한눈에 보기에도 쇠락한 시골장처럼 보였었다. 그대로 방치하면 안전사고의 위험도 있었다. 단순 리모델링이 아닌 재건축 이전개장을 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총사업비 59억원을 들여 새롭게 탈바꿈한 고산시장은 전라북도 제1호 협동조합인 고산미소 한우협동조합 판매장과 장옥동이 자리 잡고 있다. 장옥동은 고산시장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곳으로 농특산물 가공품, 체험공방, 마을공동체 숍, 공예작품 홍보판매장 등이 입점해 있다. 또 청년농부 사업가, 마케팅 전문가, 축산식품 전문가 등 20대로 구성된 '청년몰'도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판매와 블로그 운영 등을 통해 고산시장을 널리 알림으로써 시장발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장 성공의 첫 번째 요인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미 다른 지자체들이 5일장을 살리려다가 좌초한 사례가 많이 있다. 개장 초기에만 이벤트성으로 반짝했을 뿐, 장기적으로 고객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고산시장 또한 그러한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의 노력이 중요하다. 완주군의 최대 장점인 농업농촌수도로서 '로컬푸드 1번지' 이미지를 충분히 살리면서 지역친화 상권 만들기에 노력해야 한다. 시장 상인회가 주축이 돼 상가와 보완관계를 유지하면서 주민참여형 생활장터를 운영하고, 계절별로 농산물, 임산물, 특산품을 판매하는 향토노점을 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자고로 시장의 재미는 사람구경, 물건구경 하는 재미다. 시골집에서 오랫동안 보관해온 중고물품 노점을 연다거나, 어린이들이 자신의 물건을 자율적으로 교환 할 수 있는 물물교환 장터를 연다면 가족단위 손님을 불러 모으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고산시장은 도내에서 처음으로 이전 개장한 전통시장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도에서는 전통시장을 시장기능뿐만 아니라 관광과 문화를 체험하고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문화관광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육성해 나갈 계획이다. 그동안에는 아케이드와 주차장 설치 등 환경개선에 많은 예산을 투자해 왔지만, 앞으로는 시장별 특성에 맞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전통시장 활성화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생각이다. 전통시장은 단순히 상품만을 구매하는 장소가 아니라 정과 이야기를 덤으로 얻어가는 문화공간이 돼야 한다. 어린시절 할머니 손잡고 따라갔던 시골장터처럼 따뜻한 정과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전통시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