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나의 것

김은실

▲ *수필가 김은실씨는 1989년 〈한국시〉수필로 등단. 수필집 〈나는 꿈꾼다〉 〈불꽃 되어〉가 있다.
행복하면 떠오르는 얼굴. 활짝 웃고 있는 그 얼굴.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수단의 자랑인 톤즈 부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하고 있었다. 선두에 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그 남자. 그 사진에 겹쳐 떠오르던 다른 모습의 그의 얼굴.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새로 지은 병원의 지붕 위에 올라앉아서도, 흙탕물 같은 개울에서 그 곳 소년들과 한 타령이 되어 뒹굴면서도 그는 웃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면 눈물을 흘렸다.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 눈물을 가장 큰 수치로 생각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을 울리고야 만 그 남자.

 

그 곳 삭막한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고故 이태석 신부.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보면서 나 또한 주체할 수 없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들, 명예와 부, 안락과 평안을 버리고 톤즈로 달려가 그 곳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던 사람, 그들 모두에게 희망을 주었던 사람. 마지막 그를 배웅한 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흩어지지 않고 한 자리에 모여 부라스 밴드가 연주했던 그 노래.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후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당신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다 "목적은 무슨 목적? 그냥 사는 거지 뭐."라는 무책임하고 회의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겠다. 아님 "이왕 태어났으니 내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사는 것." 이라는 약간은 불투명하나 자기 삶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하겠지. 나아가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싶다."라는 분명한 삶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이도 있겠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형이상학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으리라. "내가 사는 동안 오늘이 어제보다 그리고 내일이 오늘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라는.

 

그리고 "추구하는 삶의 목적을 이루었을 때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또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행복.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흔히들 세상에서의 행복조건을 건강과 재물, 그리고 권력과 명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다 이뤘다고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무엇인가를 원하고 그것을 손에 넣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큰 것을 원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질주요, 목마름이니 헉헉대며 달려야 하는 그 과정이 어찌 평탄하기만을 바랄 수 있으며 그 갈증에 어찌 마음이 평안할 수 있을까. 이루려고 힘쓰면 힘쓸수록 평안과 행복은 자꾸 뒷걸음치기 일쑤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더 가지려고, 더 이루려고 힘쓰기보다는 그 욕심들을 덜어내는 데 있지 않을까. 남보다 가진 것은 적어도 늘 만족하고 기뻐하면서 살 수만 있다면 진정한 행복은 나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