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망부의 백제오가(百濟五歌)-(상)] 여인네 고운 정절 형상화 '정읍사'만 전해져 아쉬움

백제에는 예로부터 여인들의 곧고 고운 정절이 여러 작품 속에 아름답게 형상화돼 우리들 가슴을 적셔온 노래들이 많았다. 불행히도 그 가사가 전해오지 않았지만, '고려사' 악지 권 24 백제조엔 '선운산', '무등산', '방등산', '정읍사', '지리산' 등 백제오가가 노래의 내용만을 담은 채 전해오고 있다. 다만 이 가운데 정읍사만이 연행형식(演行形式)과 더불어 그 가사가 아래와 같이 '악학궤범'에 전해져 백제노래에 담긴 배경이나 내용을 상고할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악사(樂師)가 악공(樂工) 16인을 거느리고 북받침대를 받들고 동편 기둥으로부터 들어와 새 날개를 펼치듯 대전(大殿) 안에 놓는데 - 먼저 북쪽에, 다음에 서쪽, 다음에 동쪽, 다음에 남쪽에 두고 - 나아가며 악사는 북을 안고 16번을 친다. 다시 동편 기둥에서 들어와 북을 놓고 남쪽으로 나가며 - 북마다 2번 치면 - 여러 기생들이 일제히 정읍사(井邑詞)를 노래한다. 전강(前腔)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소엽(小葉) 아으 다롱디리/ 후강(後腔) 全저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대를 드대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과편(過篇) 어느이다 노코시라/ 금선조(金善調) 어긔야 내가논대 졈그랄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소엽(小葉) 아으다롱디리

 

'무등산'을 제외한 백제오가 대부분이 사랑하는 임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연가풍(戀歌風)으로 이 고장 여인들의 아름다운 정절을 노래하는 공통소(共通素)를 지니고 있다. 이들 노래 속에는 여인들의 한(恨)이나 원(怨)이 조금도 서려있질 아니하고 오로지 임만을 걱정하고 고대하는 기다림의 미학이 주조를 이루고 있어 여느 속요나 향가와도 다른 특성이 있다. 백제가요 가운데 유일하게 가사가 전해져오는 '정읍사'를 보면 장을 보러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떠오르는 달을 보며 기원하면서 기다리는 아내의 아름다운 정조(情調)가 작품 전반에 흘러넘쳐 유려하기가 이를 데 없다.

 

'지리산'은 구례현에 살고 있는 한 여인의 자색(姿色)이 아름다웠는데 비록 가난하게 살더라도 부도(婦道)를 다한 여인으로서 이름이 높았다. 백제의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첩으로 삼으려 하자 죽기를 각오하고 절대 왕명을 따르지 않겠노라고 맹세한 노래다. 이 노래 역시 다른 백제오가와 더불어 여인의 정절을 주제로 한 것으로 백제 개로왕 때의 도미설화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아마도 하나의 설화원형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구구전승(口口傳承)하는 동안 변이(Variation)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결과로 보여진다.

 

도미설화는 음탕한 왕이 아름다운 유부녀를 탈취하려다 결국 실패하고 만 우의(寓意)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설화치고는 상당히 드라마틱한 구성으로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왕의 복장을 한 신하가 도미의 아내인 줄 알고 동침에 성공했지만, 일이 끝난 이후 알고 보니 도미의 처로 가장한 몸종이었다는데서 해학(諧謔)과 풍유(諷諭)성이 넘쳐난다. 뒤늦게 이러한 사실을 안 왕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도미의 두 눈을 뽑고 배에 태워 바다에 띄웠다. 그러나 남편은 바다를 표류하다가 기적적으로 아내를 만나 재회를 하는 극적 구성이 돋보이는 흥미로운 설화다. 사건의 구성이나 진전이 극히 자연스럽게 짜여져 있어 하나의 단편이나 희곡으로도 손색이 없는 이야기구조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박종화(朴鍾和)는 이 설화를 소재로 삼아 단편 '아랑의 정조'를 창작하기도 했다.

 

'방등산' 은 나주의 속현인 장성 성내에 있는데, 신라 말에 도적이 크게 일어나 방등산을 근거지로 양가집 부녀자를 잡아갔다고 기록돼 전한다. 장성현의 한 여인이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남편이 자신을 구원해주지 않자, 이를 슬퍼하고 원망하면서 노래한 것이 방등산가라 했다. 이로 보면 방등산가 역시 오로지 사랑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나머지, 도적의 소굴 속에서 자신을 구하지 못하는 남편을 원망하는 망부가라 할 수가 있다.

 

'선운산'도 전북 고창 선운산을 배경으로 한 망부의 노래다. 장사현(長沙縣, 지금의 전북 무장면)에 사는 한 남자가 전쟁에 나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가 날마다 선운산 마루에 올라가 사랑하는 남편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고대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 역시 오로지 남편만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망부가였음을 '고려사' 악지의 짧은 기록 속에서 엿볼 수가 있다. 하지만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나 황조가(黃鳥歌), 구지가(龜旨歌)처럼 한시로라도 번역돼 문헌에 실려져 전해왔다면 정읍사와 더불어 백제오가에서도 이 고장 백제여인네들의 아름다운 정조(情調)를 엿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국문학자·전주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