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도 비슷하다. 1970년대 최신 건축공법으로 한국에 장충체육관을 지어줬던 나라가 필리핀이다. 그런데 이젠 대졸 학력 가정부를 세계로 공급하는 형편 없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치지도자들의 무능과 부패 때문이다.
반면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탈퇴한 뒤 리콴유라는 걸출한 지도자 덕에 안정과 번영을 누리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4500달러다.
중국도 그런 범주에 든다. 1977년 등소평이 정권을 잡은 뒤 30여 년의 짧은 세월 동안 세계에서 두번째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외환보유고가 3조달러에 이른다. 이중 1조4000억달러는 미국의 국채 등을 매입한 물량이다. 이러니 미국도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차기 지도자로 낙점되기 전 20∼30년 간 검증을 받는다. 문제 있는 지도자는 여과될 수 밖에 없다.
지역의 발전도 지도자의 역량에 크게 좌우된다. 전북은 어떤가. 7선 국회의원도 나왔고 국회의장, 정당 대표, 대선후보 등 숱한 정치지도자들이 배출됐다. 하지만 지역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인구는 빠져나가고 지역총생산량은 전국 최하위권이다. 선거 때마다 그들은 "지역발전을 책임지겠다"며 사자후를 토했지만 립서비스에 그쳤다. 이젠 전북의 자긍심, 자존감마저 희박해지고 있다. 아이티나 필리핀처럼 말아먹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지역 지도자의 '허당'이 드러난 조사결과가 나왔다. 전북대사회과학연구소와 전북애향운동본부가 전국 19세 이상 1200명을 대상으로 '전북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김대중 전 대통령(11.9%) 춘향(10.5%) 전봉준(6.8%) 정동영(5.2%) 이성계(1.8%) 순으로 응답했다.
국민의 눈에 각인된 전북 인물이 이다지도 없단 말인지 허탈하고 씁쓸하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팔십리'라고 했다. 전북이 발전하려면 걸출한 지도자를 배출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인물을 키워야 한다는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