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문화로 경제페달 밟다 - 4. 일본 나오시마 (상)

출판·교육기업 베네세그룹 사회공헌 차원 투자 / 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 거장 작품으로 가득 채워 / 인구 3600여명…연간 관광객 30만명 맞아'대박'

▲ 나오시마가 주민 3600여 명의 수백 배가 넘는 외지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예술의 섬'으로 변모한 것은 안도타다오가 설계하고 건축한 베네세 하우스 덕분이다. 이는 베네세 하우스를 위에서 찍은 풍광이다.

일본 가가와현 다카마쓰항의 북쪽에 위치한 섬 나오시마(直島). 나오시마행에 몸을 실은 여객선은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야트막한 해안선을 배경으로 올망졸망한 섬들과 푸른 바닷길이 빚어내는 세토내해의 절경은 '아시아의 지중해'라는 평가가 과장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50여 분 항해 끝에 도착한 나오시마 미야노우라항 부둣가에 일본의 세계적인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설치미술'빨간 호박'이 눈에 띄었다. 야요이는 한때 루이비통이 데려가기 위해 대단히 공들였던 예술가이기도 하다. 나오시마 순례는 그렇게 시작됐다.

 

△ 20년 만에 현대미술 메카로 거듭나

 

인구 3600여 명에 불과한 나오시마는 자전거를 타고 2시간이면 돌 수 있을 만큼 아담한 섬이다. 연간 30만 명이 넘게 찾아오는 숨겨진 명소지만 20년 전만 해도 근대화 과정에서 수탈됐다가 버려진 섬에 가까웠다.

 

미쓰비시가 1917년 이곳에 중공업 단지를 만든 뒤 70여년 간 구리 제련소에서 나오는 연기와 폐기물 때문이다. 1960년대 8000여 명이던 인구는 현재 3200여명에 불과하다. 인구 감소세는 점차 완만해지고 있다.

 

나오시마의 역사를 뒤바꾼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출판·교육 기업인 베네세그룹(회장 후쿠타케 소이치로)이다. 베네세그룹은 1980년대 이곳에 어린이 국제 캠프장을 계획했었으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의 교우로 인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추진됐다. 안도가 설계한 베네세하우스 미술관(1992), 지중(地中) 미술관(2004), 이우환 미술관(2010) 등이 섬에 들어앉혔고, 잭슨 폴록·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주민들이 떠난 혼무라 지역의 전통 가옥 7채를 건축가·작가 등에게 의뢰해 현대미술공간으로 바꾼 '이에 프로젝트'도 뒤따랐다. 1989년부터 시작된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섬 마을의 자연과 예술이 경계를 허물며 매혹적 융합을 이뤄냈다.

 

베네세그룹이 현재까지 나오시마에 투자한 액수는 6000억 원이 넘는다. 그럼에도 30년 동안 더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베네세그룹 의지는 오지에 가까웠던 나오시마를 가가와현 35개 지자체 중 소득 1위로 올라서게 만들었다. 20년 전만 해도 잠잘 곳이 한두 군데에 그쳤으나 최근엔 민박집과 음식점이 30여 곳 정도까지 늘어났다. 하마다 타카오 나오시마 촌장은 "그러나 예술 프로젝트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주민들도 이제는 나오시마 주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점이 가장 값진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 12개 섬 손잡고 3년마다 국제예술제

나오시마의 효과는 인근 섬으로도 확산됐다. 한센병 환자들의 요양섬으로 쓰였던 오시마, 일본 최악의 산업폐기물 투기 사건이 발생했던 데시마, 제련소가 폐쇄되며 쇠락한 이누지마 등에서도 '이에 프로젝트'와 비슷한 시도가 진행되거나 미술관으로 바꾸는 작업 등이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베네세그룹이 2010년 처음 시작한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세토내해에 있는 여러 섬의 자연과 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제다. 올해는 나오시마를 중심으로 데시마·오시마 등 12개 섬에서 봄·여름·가을 세 차례로 나눠 열리고 있다. 첫 회였던 2010년 관람객이 무려 94만 명이 다녀가면서 예술제는 올해 더 확장됐다. 영구 설치를 목적으로 2010년부터 집적된 작품을 비롯해 지중미술관, 베네세하우스 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테시마 미술관, 안도 타다오 미술관 등이 어우러져 이젠 섬 전체가 일종의 순례지화 됐다.

 

올해 축제 주제는 '깃발'. 여름 시즌엔 다카마쓰 항에서는 방글라데시 프로젝트, 건축가 단게 겐조 탄생 100주년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특히 방글라데시 프로젝트는 '방글라데시 특별전'으로 불릴 만큼 다양한 행사로 주목을 모았다. 쇼도지마에서 만나는 '후쿠타케 하우스 아시아 아트 플랫폼'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 호주 등 각국이 운영하는 예술기관과 그들이 후원하는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가 리모델링해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화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전시, 심포지엄, 워크숍 등 5개의 행사로 구성됐다.

 

일본 국제교류기금 등의 후원으로 24개국 210팀의 예술가가 참여한 올해 축제의 방문객은 130만~14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바다와 섬의 가치를 복원하며 지역 재생을 목표로 한 세토이치 트리엔날레는 치유와 휴식을 안겨주는 예술 순례의 성지같았다.

 

● 가타가와 프람 '세토이치 국제예술제' 디렉터 "유명인도 공모 통해 참여 각국 4500여명 봉사활동"

나오시마 곳곳에는 파란 깃발이 펄럭이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세토이치 국제예술제 2013'가 테마로 삼은 '깃발'을 하늘과 바다로 투영시킨 것. 예술제로 인해 활기차게 도약하는 나오시마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듯 했다. 가타가와 프람 세토이치 국제예술제 종합 디렉터는 "세토이치 국제예술제는 젊은 사람들 혹은 외지 사람들이 세토내해와 바다의 매력을 알고 여기서 사는 주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축제"라고 설명했다.

 

가타가와 프람 디렉터는 "지역의 전통문화와 접목한 주민 참여형 공연"을 경쟁력으로 꼽았다. 프로그램의 20%가 전 세계에서 공모한다는 것. 미나미 카오 등과 같이 유명인들도 공모를 통해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그는 "4500여 명의 다국적 자원봉사자들도 축제의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면서 "나오시마의 성공이 다른 섬에도 알려져 주민의 참여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제1회 예술제의 예산은 7억엔(약 79억원), 행사를 마친 뒤 지역 은행이 추정한 경제 효과는 11억엔(약 124억원)이었다. 올해 봄·여름·가을 세 시즌으로 나눠 열리는 행사를 보면 지난 축제 때 방문객을 웃도는 이들이 다녀갔다"면서 '예술의 힘'으로 바꿔진 섬의 매력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나오시마가 일본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섬이라는 그의 의견에도 수긍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