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긴 여행

▲ 천득염 전남대 건축학과 교수
지난여름 이름하여 회갑여행을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평소에 가고 싶은 곳을 숙의하던 중 서유럽의 박물관이 있는 대도시를 가자는 데 동의하고 10여일만에 여기저기를 주마간산격으로 점 만 찍고 다녀왔다. 뒤늦게 사진을 정리하며 여행지를 되돌아보니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여기를 또 갈까 하는 생각에 아쉬운 느낌도 든다. 여행 자체가 좋아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그냥 허둥지둥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이 차분히 보고 느끼고 올만큼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냥 허둥지둥 살아가는 것이지 여행처럼 선택하고 준비하고 나중에 스스로 되돌려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로운 생각이

 

알랭드 보통은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고 말했다. 비행기나 배, 기차보다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사이에는 기묘하다고 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유도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어려운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에 따라 쉽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빅토르 위고는 '여행이란 지극히 아름답고 너무 커서 좁은 시야를 벗어나 버리는 어떤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은 새로운 것에 눈을 뜨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은 우리의 삶에 다양한 의미를 준다.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의 삶이라면 여행만큼 역동적으로 풍부하게 드러내준 것은 없다. 일상에서의 벗어남, 만남과 헤어짐, 현실과 로망, 새로움에 대한 열망, 일과 생존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자주 나타나는 문제는 기대와 현실의 관계와 간극이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 특히 누구와 함께 가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숱한 문제와 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조언들이 있지만 어디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가? 모두 자신의 몫으로 던져진다.

 

여행을 위해 몇 권의 책을 보았다. 특히 설혜심 교수의 〈그랜드투어〉는 여행의 의미를 알게 하는 귀한 자료였다. 최초의 여행은 정복자들의 전쟁였고 무역을 위해 동서양을 건너는 모험도 있었다. 서양역사에서 최초 여행자는 그리스인 헤로도토스이다. 그는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본 것과 들은 이야기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또한 순례자들은 예루살렘과 로마 등 성지를 속죄 차원에서 순례여행했다. 특히 영국인들에게 있어서 여행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에 콤플렉스를 느껴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엘리트교육의 최종단계였다. 애덤 스미스는 영국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보내지 않고 곧 외국여행을 시키는데 대단히 발전돼 귀국한다고 여행의 가치를 평가했다.

 

여행으로 삶의 긴 여정 준비

 

그런데 우리네 청년들은 어떤가. 취업을 위해 자신의 스펙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우리도 여행의 참 의미를 새겨 또 다른 여행에 도전해 봐야 할 때다. 실크로드를 걷고 차마고도를 넘어보며 히말라야 계곡을 트래킹해본 자가 영어를 잘하는 자보다 더 창의적 사고를 하고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잠재적 능력이 있지 않을까? 아프리카에 봉사여행을 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평화운동 여행을 하는 것은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위해 진정 의미 있는 준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