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으로 받기만해선 안 돼
예로부터 예술문화는 집권자의 의지와 관심의 정도에 의해 그 투자의 질·양과 우선 순위가 결정되어 왔다. 원래 재화를 다루는 일에 약하고 직접적인 사회 참여를 염려하는 시선이 엄격해 대놓고 문화정치를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문화 판도를 보라. 보다 일찍 이러한 편견이나 고립으로부터 벗어나 정치를 잘 활용한 개인이나 단체는 이미 두어 걸음 앞서고 있고 뒤늦게 깨달은 층은 잰 걸음으로 좇아가려해도 그 격차가 오히려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로인해 순수기초예술이라 자부하는 예술문화는 대학으로부터 도태되어가고 사회로부터도 소외되어만 가고 있다. 물론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의 중요성은 더 필요한 것이 되었지만 분업화와 전문화가 수반이 안 된다면 성과위주의 사회에서 그나마 버텨내기 힘들어질 뿐이다.
문화정치를 하자. 하지만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소용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결국 정치도 노하우가 쌓여야만 성공하듯이 각자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경험과 애정을 가진 자 중에서 기획과 행정에 관심과 흥미를 느끼는 자를 자체적으로 선별한 뒤 예술문화 정치인으로 육성하자. 정치인들이 내미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나갔다. 언제까지 겸연쩍은 표정으로 지원금을 받고, 기껏 만취해서야 메아리 없는 고성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노라'하며 곤궁한 예술가의 삶을 유지하려 하는가?
물론 모두가 정치를 할 필요는 없다. 예술가는 그렇게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객관적 위치에서 주관을 발휘할 권리가 있다. 그것이 예술 본연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내부 장악쯤을 최상으로 여기는 해당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속해 있는 분야의 구성원들을 위해 그 갇힌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반드시 키워내라고. 다만 그들이 정치(情致 : 여러 가지 감정을 자아내는 흥치)를 가진 자이어야 하며, 정치(精緻 : 정교하고 촘촘함)한 자이어야 하며, 그의 뜻이 초심처럼 본연의 장르를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뭉쳐 마음을 원래의 자리에 두는 정치(定置 : 물건을 일정한 장소에 놓아둠)한 심성을 가진 자이어야 하며, 정치(政治)의 세상에 나가서 정치(鼎峙 : 세 사람 또는 세 세력이 솥의 세 발처럼 대립함)하는 강인함과 능력을 갖춘 자로 성장할 재목이어야 할 것이다.
정치할 예술문화 인력 양성을
그런 임무를 받은 자는 자기가 속한 분야에만 충실할 일이 아니라 제안하고 기획하는 예술문화가 지역에 얼마나 큰 파급 효과를 가져 올지 친절히 설명하여 투자를 유도하여야 할 것이고 그 결과마저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다가오는 정치의 계절에 정치인들은 모든 분야에서 집단 이기적인 요구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준비가 안 된 분야에는 선도적인 입장에서 생색을 내는 일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런 수동적인 단순 수혜자의 신분을 벗어나려면 지금부터라도 각성하여 예술문화 인력을 선별하고 양성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순수예술을 더욱 더 순수하게 지켜내는 일이 될 것이고 전위병으로 나서는 예술 정치인들의 수고와 희생에 보람으로 답을 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제 예술문화정치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