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인이 운영하는 수제버거집 '전주 다이너'

햄버거 狂 아버지 큰 도움 / 정겨운 한글 메뉴판 눈길

▲ 외국인이 운영 수제버거 맛집으로 유명한'전주 다이너'.

현재 중년기를 보내는 세대의 어린시절만 해도 외국인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인형같은 사람들이었다. 신비스럽고 이상하기도 한 그런 사람이 길거리에 지나갈 때면 눈을 떼지 못하고 몇몇 동네 친구들과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다. 1990년대 이후 다문화사회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이제 피부색이 다르거나 출신국이 다른 아이들, 여성, 청년을 같은 아파트에서 학교에서 볼 수 있다. 보는 것만이 아닌 이제 소통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현재 도내 살고 있는 이주민의 수는 3만5281명. 도내 인구의 약 1.9%다. 도내를 삶터로 살아가는 이 많은 외국인이 이주민이 아니라 도내 정착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화를 그들에게 강요하고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의 문화에 관심을 갖고 소통의 매체로 공유해야 한다.

 

전주시 평화동 한 식당, 단지 음식을 먹는 식당이 아닌 전주시민과 외국인과 소통하고 외국인의 향수를 달래주는 치유의 공간이자, 다양한 문화·인종·성별이 차별받지 않고 허용되는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국적 아지트

 

캐나다인이 운영하는 수제버거가 유명해 외국인들이 북적인다는 그곳이다. 남녀노소 대략 100여명의 할로윈 파티로 동네가 시끌벅쩍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찾았다. '전주에 이런 곳이?'라는 의문으로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은 생각보다 우리의 가까이에 있었다. 삼천동 대로변, 예전에 사용하였던 전주시 로고가 약간 변형된 간판이 보인다.

 

'전주 다이너(jeonju diner)'는 캐나다에서 온 데이빗이 운영하고 있는 외국식 레스토랑이다. 하얀색 차가운 형광등 대신 오렌지빛 조명, 영화에서나 봄직한 축구게임기계, 무심한 듯 놓였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테이블이 유럽 작은 마을 식당에 들어온 기분이다. 들어가자마자 '겁나게 맛있는 음식'이라고 그리 어색하지 않은 글씨체로 씌인 메뉴판이 눈에 띈다. 메뉴는 삼천버거, 전주버거, 전라버거, 배부른 아침. 정겨운 한국말이었다. 버거의 크기에 따라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이름을 따서 삼천·전주·전라버거라 지었다.

 

"제가 이름을 짓는데 좋은 재능이 있는거 같아요."

 

데이빗은 전주에서 산지 10년이 되어간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1년만 머무를 생각이었는데 벌써 10년을 살고 있다. 그는 전주에서 부인을 만났고 영어강사로 활동하다 지난 2011년 전주 다이너를 열었다.

 

캐나다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한 그가 버거집을 차린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햄버거 광이셨거든요. 특히 햄버거 속에 들어가는 고기를 굽는데는 정말 일가견이 있으셨죠. 뒷마당에 200만 원이 넘는 바비큐 시설을 만들어놓고 항상 어떻게 하면 고기를 더 맛있게 잘 구울 수 있을지 연구하셨죠. 아버지는 고기만을, 어머니는 아주 신선한 채소를 준비해 마을사람을 초대해 대접하곤 했는데 그 맛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이런 바비큐 초고수의 햄버거를 먹고 자란 저에게 맥도날드는 아무것도 아니었죠."

 

아닌게 아니라 외국인들 사이에서 이곳은 버거, 스파게티, 케사디아 등 외국인들이 고향을 느낄 수 있는 음식맛으로 유명하다. 이곳을 찾는 사람의 30%가 외국인. 그 중에서도 90%가 전주에 살고 있다. 페이스북, 카카오톡을 통해 이곳이 알려졌고 지금은 멕시코, 호주, 필리핀, 스리랑카,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독일 등 다국적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아지트가 되었다.

▲ 전주 다이너를 찾은 어린이가 엄마와 함께 게임을 즐기고 있다.

"전주 다이너는 꼭 햄버거만을 파는 곳은 아닙니다. 저희 식당은 어떤 사람에게는 고향집이 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만남의 장이기도 합니다. 고향의 음식은 집과 가족을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외국인 친구는 저희 햄버거를 먹다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생각나서 그런 거죠. 또 어떤 친구는 스파게티를 먹으며 고향의 할머니가 생각난다고 합니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에게 그들의 집을 선물하는 것이 아닐까요?"

 

△선입견, 차별이 없는 열린공간

 

전주 다이너에서는 파티도 자주 열린다. 할로윈, 크리스마스같은 기념일은 물론이고 데이빗이 개인적으로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제는 입소문을 타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외국인은 물론 대학생, 이웃들, 데이빗의 여섯 살, 여덟살 난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 가족 등 100명은 족히 넘을 정도다.

 

"100여명이 식당 안, 바깥 테라스에 가득찼었죠. 바닥에 온통 음식으로 범벅이 되기도 하고 유리문에 음식 묻은 손자국 등 그런 난리가 없어요. 그래도 파티 호스트가 되는 건 정말 I love it! wonderful!이에요"

 

주최자가 있지만 모인 사람들이 놀이거리를 자발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이 이 파티의 특징이다. 서너명씩 같은 탁자에 모인 사람들은 트리비아(trivia)라는 게임을 한다. 잡다한 지식, 일반상식을 뜻하는 말로 서로의 설명을 통해 외국인에게 조금 어려운 단어, 상식퀴즈를 맞춰가는 게임. 처음에 어색했던 사람들이 게임을 하다보면 금세 친구가 된다, 다른 일행은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안 되는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파티가 진행된다. 한 사람이 주도하지도 않고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언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 집중하고 귀기울여 듣고 이해하고 인정한다.

 

아직 파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자연스러운 소통이 어색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끼리끼리 모여야 하고 내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의견과 다르면 얼굴 붉히기 십상이다. 이러한 경계가 나와는 다른 사람, 다른 문화, 다른 종교를 이해하기도 전에 먼저 벽을 쌓게 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와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시대에 데이빗의 공간처럼 다름이 인정되고 수용되는 곳이 세계화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 '전주 다이너' 사장 데이빗 존 반 미넨씨 "전주는 아이들 키우기 편안…한국인 아내 든든한 후원자"

 

지난 2004년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온 데이빗 존 반 미넨(David John Van Minnen) 씨는 10여년째 전주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2005년 5월 천정경 씨와 결혼을 해 현재는 1남1녀를 둔 아빠다.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을 위한 산타크로스로 변장할 깜짝 행사를 위해 몇 달 전부터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아빠의 입장에서 한국, 특히 전주는 캐나다에 비하면 치안이 좋고 범죄율도 낮아 아이를 키우기에 너무 편한 도시라고 말한다.

 

그는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유교문화가 너무 폐쇄적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실제 한국에서 경험한 유교는 점잖고 긍정적이고 사람들과의 유대감이 강한 문화다"면서도 나이로 서열을 나누는 문화는 적응하기 어려움 과제다.

 

그는 "나이에 상관없이 가족, 사회 구성원간에 우위를 따지지 않고 누구나 동등하고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서구사회의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든 숙제다"고 말했다.

 

영어강사, 프리랜서 실내 리모델링 등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에게 아내 천 씨는 든든한 내조자이자 지지자다. 데이빗에게 요리를 배워 안주인으로 주방일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데이빗은 "전주 다이너는 국적에 따른 차별없이 누구에게나 집이 될 수 있는 편안하고 유쾌한 곳이다"면서 "전주에 맛있는 버거집,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을 여러 개로 확장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임진아(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팀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