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달 본 컬럼을 통해 전북이 왕도의 고장임을 강조했다. 이번에는 가칭 '왕도 익산 프로젝트'로 돈이 되는 문화산업(cultural industry)에 불을 지필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앞서 말한 백제 무왕은 신라와 본격적인 대결을 염두에 두고 방어에 유리하면서도 군비를 충당할 물산이 풍부한 곳으로 익산을 택했다.
익산은 북쪽으로 금강, 남쪽에는 만경강이 흘러 방어에 유리한 반면, 신라로 진격하는 길목에 위치해 전략상 요지였다. 아울러 평야지대는 평화시 넉넉한 곡식을, 전시에도 군량을 비축하기에도 최적지였다. 여기에서 잠시 익산이 백제의 왕도였다는 몇 가지 증거를 확인해보자.
그 첫 번째 증거는 궁성의 존재다. 남북 490m, 동서 240m의 왕궁리 유적은 백제의 궁성의 규모를 말해준다. 왕궁리 궁성은 담장인 궁장(宮墻)을 설치하고 내부에 경사면을 따라 석축으로 단을 만들어 대지를 조성했다.
그리고 그 위에 폭 35m의 대형 건물을 지었다. 두 번째 증거는 왕실 사찰이 있다는 점이다. 궁성에서 1.4km 떨어진 제석사가 바로 그것이다. 제석사는 목탑(木塔)-금당(金堂)-강당(講堂)이 남북 중심축선상에 배치된 전형적인 백제식 가람이다. 크기도 백제 사찰 가운데 미륵사지 다음으로 크다.
세 번째 증거는 왕릉이다. 익산시 팔봉동에 있는 쌍릉은 무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고분은 1917년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무덤의 구조와 출토품이 부여 능산리 고분과 대부분 비슷한 것으로 확인됐다. 규모가 크고 부여 왕릉에서 볼 수 없었던 옥장신구까지 출토된 점 등으로 미루어 왕릉 급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도읍지 익산과 가장 연관성이 있는 무왕과 왕비인 사택적덕의 딸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다. 익산의 풍부한 백제역사를 적극 상품화해야 한다. 당장 왕궁리 유적과 제석사, 왕릉까지 잇는 왕도의 위용을 명확한 고증아래 컴퓨터 그래픽으로 입체감 있게 복원하자. 왕도 시뮬레이션 시각화 작업은 발굴과 보존, 신축과 증축을 포함한 향후 모든 복원작업의 표준이 된다. 화려하고 정교한 그래픽으로 왕궁의 이모저모를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보여주자. 더 나아가 한강 일대의 위례성에서부터 공주, 부여, 익산을 잇는 백제 네트워크를 구축하자. 백제 멸망의 통한이 237년 만에 후백제로 부활한 '왕도 전주'와도 연결짓자.
이러한 백제역사의 무대는 선사시대 고창 고인돌과 군산의 근대유산, 항일 유적지, 아리랑 문학관의 김제, 지리산과 회문산 일대에 이르는 소설 태백산맥의 현대사까지 망라한 전북의 역사에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익산이 교통의 중심지이자 우리나라 보석산업과 석재산업, 섬유산업의 메카라는 점, 국가식품산업클러스터, 4대 종교인 원불교의 본산지라는 점도 익산이 지닌 문화산업(cultural industry)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왕도 익산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짜보자. 이제 역사와 문화는 곧 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