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나오는 견훤의 얘기다. 신라 청년장교 출신인 견훤은 "내가 백제 의자왕의 분을 풀어주겠다"고 공언하면서 국호를 후백제로 정한 뒤 스스로 왕이라 칭했다. 그리고 관직을 만들어 직책을 나누어 주었다. 이 때가 견훤의 나이 서른 셋, 서기 900년의 일이다. 그러니 올해는 전주 정도(定都) 1113주년이 되는 해다. '천년 고도(古都) 전주'는 여기에서 발원한다.
후백제는 부패하고 타락한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 혼란기에 출현했던 정권이다. 국가체제도 미비했고 정통왕조도 아니었지만 엄연한 후삼국 시대의 한 축이다. 36년이라는 짧은 역사였지만 기상은 하늘을 찔렀고 지향하는 가치는 오늘날에도 의미심장하다. 갈수록 쪼그라들고 노령화되고 있는 전북, 정치력이 약화되고 있는 호남에 주는 메시지가 특히 그렇다. "내가 곧 왕"이라고 외치고, "왕건을 무찌른 뒤 평양성루에 활을 걸어놓고 대동강 물에 말의 목을 적시겠다"고 호언할 이는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
역사인식 또한 웅대하다. 역사적 계통은 고조선-북부여-백제-후백제로 이어져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과 연관 짓고 있다. 그런 점에서 후백제 도읍인 전주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실로 크다.
역사는 대개 승자의 기록이다. 짓밟히고 구겨진 견훤정권의 자료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그 틈바구니에서 진실을 찾는 것,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자체가 또한 역사다.
전주 정도(定都) 1100주년이었던 2000년 첫 학술대회('후백제 견훤정권과 전주') 이후 그런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엊그제 열린 학술대회('후백제 왕도 전주의 재조명')도 그 일환이다. 궁궐 터나 동고산성의 원형보존 등 연구성과도 진화하고 있다.
'후백제' '견훤' 등은 우리지역 사람들에겐 묘한 감상과 긍지를 심어주는 정신적 바탕이다. 후백제의 기상과 천년고도 전주의 자긍심을 되찾기 위한 노력, 그리고 관심과 지원이 더욱 증폭됐으면 한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