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갈잎을 좋아하나보다. 가을바람이 살랑거리며 갈잎을 희롱한다. 갈잎도 속내는 싫지 않은 듯 다소곳한 흔들림으로 마음을 대신한다. 그녀의 매혹적인 눈 흘김과 은근한 추파에 몸이 달아오른 바람은 몸짓을 키우고 힘을 더 한다. 사내다운 몸짓이다. 가을바람의 적극적인 구애에 갈잎이 넘어 갔나보다. 열정적으로 휘감긴 두 몸이 하늘로 솟구치는가 싶더니 이내 땅을 향해 서로 껴안은 몸을 비틀며 떨어진다. 사랑의 환희에 정신마저 혼미해진 탓인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날린다. 낙엽이 되어 비처럼 내리고 있다.
오늘 낮에는 같이 수필을 공부하는 문우들과 순창의 강천산으로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다. 맨발로 걷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은 흙길을 걸어서 구장군폭포까지 갔었다. 가는 길 곳곳마다 갈잎과 가을바람의 사랑이 낙엽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초록의 이파리가 갈색 옷으로 갈아입더니 사랑에 눈이 멀어 버렸나보다. 연두색이던 새봄부터 숱하게 이어진 유혹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던 정절은 어디에 깊이 묻어두고 한순간에 마음을 열어 몸까지 주어 버린 것이다. 단한번의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 던져버리는 갈잎의 열정이 내게는 있었던가? 할 수만 있다면 해보고 싶다. 죽어도 원이 없을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
바람과 갈잎의 사랑이 노란색, 빨간색, 연갈색의 낙엽비가 되어 내리는 그 숲길은 마술사 같았다. 오가는 모든 사람을 글쟁이로 만들어 버리니 말이다. 눈을 돌려 보이는 것마다 좋은 글귀가 되어 머릿속을 달음질하니 어찌 글쟁이가 되지 않을 수 있으랴. 앞서 걷는 중년의 아줌마는 시인이 되었을 테고 잽싼 걸음으로 우리를 재촉하는 P문우는 이미 수필 한편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도 생각은 어김없이 엉뚱한 곳으로 치닫는다. 갈잎의 사랑을 얻어낸 저 바람이 혹시 봄에 꽃잎을 유혹했던 그 바람은 아니겠지…….
빨간 단풍이 산언저리 나무들 사이에 크고 작은 모양으로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색이 아주 고왔다. 수분이 넉넉하여 주름하나 없는 단풍잎이 생기 넘치는 처녀의 피부처럼 탱탱하였다. 물이 말라 잎이 타버린 단풍이 간혹 보여 비교되니 그 자태와 색깔이 더욱 곱고 두드러졌다. 그런데 단풍나무가 싫어졌다. 산의 중턱이나 높은 자리, 있어야 할 곳에는 별로 없고 눈에 잘 띄는 길가에 자리 잡고서 저 혼자만 잘났다며 뽐내는 거들먹거림이 맥없이 미워진 까닭이다. 눈을 들어 올려 보니 산에는 노란색, 연갈색이 단풍 색보다 더 짙었다. 어렵고 힘든 자리는 갈잎나무들이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등산로 가장자리나 주변에도 단풍나무보다 그들이 더 많았다. 그러면서도 단풍나무를 호위하고 우러르며 단풍 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장미꽃다발은 안개꽃에 싸여 있을 때 그 아름다움이 더해진다. 장미 한 송이만으로는 외롭고 볼품없지만 안개꽃 몇 줄만 보태놓으면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게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장미꽃다발로 바뀐다. 갈잎나무들은 장미꽃다발의 안개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랑하고 뽐내기는 쉽다. 보이지 않게 남을 위해 희생하며 주변을 돋보이게 하는 삶은 쉽지도 않고 빛도 나지 않는다. 사랑도 주기보다는 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고 돋보이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내 모습이 그랬다. 스스로 자랑스럽기까지도 했었다. 특히 수필을 배우며 돌아본 내 인생은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것이 잘살아온 인생길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면이 나의 깊은 속마음이나 진정성까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어두운 그림자만 남기는 경우가 많았음을 깨닫고 뉘우칠 때가 많았다. 깨우치고, 후회할 때마다 한걸음 한걸음씩 본래의 내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리라. 수필은 진정한 나를 찾아줄 것이다. 수필과 여정을 같이하며 나를 찾아 떠난 끝없는 길 위에서 나는 갈잎나무를 닮고 싶다. 갈잎이고 싶다.
*수필가 윤철씨는 〈대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행촌수필문학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