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해 첫눈이 내리자 JP한테 연락이 왔다.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하지 않았느냐. 만나자"며 자리를 함께 했던 기자들에게 전화해 회동이 이뤄졌다. 감동, 또 감동∼. 원래 감성이 풍부하기도 했지만 자상함과 신뢰 때문에 JP 주변에는 기자들이 많았다. 특히 정치인이 새겨야 할 일화다. 진정성 없이 "언제 한번 만나자"고 지나치는 식으로 인사하는 이들이 많다. 맛보기로 살거나 신뢰성 없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인 정호승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제 전주와 고창 군산 정읍 남원 장수 임실 진안 등 8개 시·군에 첫눈이 내렸다. 대부분 지역은 많은 양이 아니라서 쌓이지는 않았지만 장수지역에는 오늘 하루종일 눈이 내렸다. 첫눈 내리는 날 이 시를 읽고,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른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낭만과 추억이 많다면 풍부한 인생을 산 것이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지 않던가.
첫눈은 본격적인 겨울로 진입한다는 신호다. 중년 이후에겐 또 하나의 연륜이 깊어진다는 예고다. 설레임도 없고 낭만과 추억을 끄집어 내는 것조차 귀찮아 한다면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리는 설레임은 누구에게나 있다. 지금 내 자신은 어느쪽에 있는지 해물파전에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면서 반추해 볼 일이다. 그리고 다시 첫눈 내리는 날 보고 싶은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해 보시라. 이경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