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시문
〈제시문 1〉
지금 우리는 거의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고판다는 논리가 더 이상 물질적 재화에만 적용되지 않고 점차 현대인의 삶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시장의 본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공적으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시장이 지닌 도덕적 한계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장의 도덕적 한계와 관련해서는 공정성과 가치 훼손의 문제를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정성과 가치 훼손의 문제는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것과 사고팔지 말아야 할 것을 결정할 때 중요하기 때문이다. 먼저 공정성의 문제는 사람들이 불리한 조건이나 경제적 필요성의 긴박한 정도에 따라 물건을 사고팔 때 생겨날 수 있는 불평등에 관한 것이다. 공정성의 측면에서 보면 시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시장 교환이 항상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시장 교환을 불공정하게 강요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가치 훼손의 문제는 시장이 손상시키거나 변질시킬 수 있는 태도 및 규범에 관한 것이다. 어떤 도덕적·시민적 재화는 사고파는 경우에 그 가치가 감소하거나 변질될 수 있다. 가치 훼손 문제는 공정한 거래 계약 조건이 성립됐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평등한 조건에서든 불평등한 조건에서든 모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굶주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자신의 신장을 파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사람은 자신의 신장을 팔겠다고 결정할 수 있지만, 이 결정이 정말 자발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신장 거래 시장은 인간을 여러 부속이 합쳐진 존재로 보는, 변질되고 객체화된 인간관이 만연하는 것을 부추길 수 있다.
〈제시문 2〉
빼빼로 데이, 칸초 데이, 링 데이, 새우깡 데이, 에이스 데이…. 과자 이름 뒤에 왜 이렇게 많은 ‘~데이’가 붙었을까? 제과업계가 만들어내고, 일부 언론이 부채질하면서 생겨난 기념일 문화다. 청소년들은 이런 기념일이 왜 생겨났는지도 모르면서 친구들에게 과자를 사주기에 바쁘다고 한다. 제과업체는 수많은 기념일 덕에 매출액이 크게 신장했다는 소식이다. 밸런타이 데이, 화이트 데이, 로즈 데이, 블랙 데이 같은 것까지 치면 우리나라엔 기억해야 할 기념일이 너무 많은 셈이다. 문제는 이런 각종 기념일이 초콜릿이나 장미, 은제품 액세서리, 자장면 등 특정한 상품을 소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대중문화가 상업주의와 상술의 포로가 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하다.
놀이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핼러윈 데이는 2천년 전 영국 땅 켈트족이 벌인 민속행사에 뿌리를 둔 것이다. 아일랜드의 민속문화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상업주의와 만나 꽃을 피웠고, 미국의 문화상품은 태평양을 다시 건너와 요즘에는 서울 강남의 아이들을 휩쓸고 있다. 꼭 강남이 아니더라도 요즘엔 학교 근처 문구점에 가도 핼러윈 데이를 위한 가면과 복장을 파는 곳이 많다고 한다. 핼러윈 데이를 기념하는 아이들은 정월대보름, 영등, 삼짇날, 단오, 유두, 동지를 알까?
상업적 의도를 분명히 깔고 있는 국적 불명의 놀이문화가 우리 사회 대중문화의 주류로 등장하는 현상은 이미 일반화한 지 오래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이라고 간단히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그 결과가 가져올 후유증이 상당히 크다. 놀이문화는 공동체 정신의 표현이며, 뿌리없는 문화현상은 공동체의 균열을 가져왔다는 점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교육의 산업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태도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를 상품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각 개인이 지닌 개성과 욕망의 표현 도구인 문화의 본질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제시문 3〉
세계 문화 또는 초국적 문화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하나의 동질적인 새 계급을 형성했다. 초국적인 인텔리 또는 세계인(global man)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가진 친구들이 있고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마치 전통 사회에서 이웃 마을에 놀러가듯이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이런 부류에는 정치가도 있고 학자, 언론인, 외교관 등을 포함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다. 비록 이들이 사고 양식과 행동 양식은 공유하지만, 세계인 역시 그가 속한 나라의 개별적 경험을 세계 문화에 접목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다양성을 전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세계 문화의 속성이 근본적으로 서유럽과 미국의 문화에 근거해 있다는 현실이다. 미국의 초국적 인텔리들은 자국에 있거나 외국에 있거나 문화적 갈등이 덜할 것이며, 이들에게는 세계 문화가 곧 그들의 문화일 수 있기 때문에 세계 문화가 보편성 속에 다양성을 지닌다는 논리는 적용될 수 없다. 다문화 현상, 즉 여러 가지 문화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중심부과 국가가 아니라 주변국에서 먼저 나타났다는 점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 쟁점 논제
1. 논술 논제
제시문 (1)의 관점에서 제시문 (2)를 논평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3)의 ‘계급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900자 내외)
(전북일보 논술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생은 yimza@daum.net으로 메일주시기 바랍니다)
2. 면접 논제
기업들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펼치고 있는 ‘상업적 문화’에는 어떤 속성이 들어있는지 주위 학생들과 같이 토론해 보세요.
● 논제의 포인트 및 평가기준
● 쟁점 확대하기
1. 시장의 자유
지금의 경제 문제는 국가를 넘어 전지구적인 문제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학문적인 한계는 ‘사회과학적’지식이 부족한 것과, 또한 경제에 있어서 국제정치의 미치는 문제, 국내 사회심리와 서민경제와 정치적 경향을 무시 한다는데 큰 허점이 있다.
애덤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는가? - 손이 보이지 않는것은 손이 없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은 허구이다. 시장이 황폐화되고 법의 제약을 받지않는 ‘정글의 법칙’에서 서로 합리적 ‘이성’을 근거로하는 신사 협정같은 것은 없다. 여기서 비유적으로 말하고자 한다. “인간의 탐욕이란 돈이 된다면 뜨거운 지옥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며, 천국의 무료한 시간 속에 돈이 궁하면 윤락업을 하는 것이 인간의 탐욕이다”
2. 상품 마케팅
본래 빼빼로데이는 부산 경남의 여학생들이 11월 11일에 서로 선물을 나누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연이 기업의 스토리텔링으로 확산된 것이다. 문제는 대중지성이다. 대중의 소비가 현명해져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상품은 옳고 그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기업의 생리는 무조건 물건을 많이 파는 것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은 마음이다. 각 개인의 순수한 마음을 상업적으로 악용한 기업의 마케팅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다.
3. 은밀한 이데올르기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단순히 정치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넘어 노동에서 여가활동, 음식에서 섹스까지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고 있다. 특히 현대사회 이데올르기의 특징은 각종 광고, 마케팅, 홍보 등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소비자들은 기업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 쟁점 기출문제
논술 : 고려대 2013 인문계 A
Ⅰ. (2)의 관점에서 (1)의 (가), (나)를 논평하고, (2)와 (3)의 차이에 주목하여 ‘상품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75점)
Ⅱ. (4)를 읽고 다음 논제에 답하시오. (25점)
1. (가)의 방식을 사용하면 어느 가격에 누가 물건을 갖게 되는가? 그리고 물건을 배분 받는 사람들의 물건 가치 평가의 평균은 얼마인가?
2. (나)의 방식을 사용할 때 물건을 배분 받는 소비자 짝의 경우를 모두 나열하고, 각 경우의 확률이 얼마인지 구하라. 물건을 배분 받는 사람의 물건 가치 평가의 기댓값을 구하라.
● 쟁점 관련 도서·영화
1. 관련 도서
겟 리얼, 일레인 글레이져
대한민국 권리장전, 박홍규
2. 관련 영화
배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
아이언맨 2
● 학생 글과 교사 총평
1. 학생 논술문
시장은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시장에서는 불공정 문제, 가치 훼손 문제 등 도덕적 문제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제시문 2에서는 ‘~데이’의 사례를 통해 문화가 시장의 노예가 됐음을 보여준다. 또한 제시문 2는 우리 사회 대중문화의 주류로 부상한 문화가 시장의 노예가 된 문화이고 국적불명이라며, 이런 현상이 공동체의 균열을 가져오고 문화의 본질을 훼손할 것이라 경고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시장은 도덕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현재 시장의 이런 문제가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시문 2의 주장처럼 시장은 문화를 상품화하였고, 각 개인의 개성과 욕망을 표현하게 해주는 문화의 본질을 훼손하였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시장이 문화의 본질을 훼손하는 흐름이 한 공동체가 아닌 여러 공동체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세계화의 진행과 함께 형성된 계급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세계화에 의해 형성된 계급은 세계문화의 주류인 서유럽과 미국 문화 계급과 비주류 계급으로 나뉜다. 서유럽 미국 문화 계급에서 생성된 상업주의에 물든 문화가 비주류 계급의 문화로 침투할 때 비주류 계급은 이런 문화를 거의 일방적으로 수용할 뿐 주류 계급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러다 보니 문화의 가치 훼손 문제가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비주류 계급에서 심각히 발생하게 된다. 이 현상이 지속되면, 제시문 2의 주장처럼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모든 공동체가 아니라 비주류 계급이 될 것이다. 균열이 생긴 공동체는 더 낮은 계급으로 추락하고, 결과적으로 계급성은 더욱 심화된다.
비도덕적 시장논리에 따른 문화의 가치 훼손은 계급성을 심화 시킨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상업주의적 문화에서 탈피하여 문화의 본질을 지켜야 한다.
최원영 (동암고 2학년)
2. 교사 총평
독해력
독해의 기본의 논제이다. 논제가 요구하는 형식에 맞추어 글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논제에서는 제시문 (1)의 관점에서 제시문 (2)를 논평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지금 최원형 학생의 논술문에서는 분절된 듯 하지만 제시문(1)을 바탕으로 제시문 (2)를 잘 논평하여 문화의 상품화 및 공동체의 균열을 가져온다라고 말하고 있다.
논리력
논술은 쟁점에 대한 논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장은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다’ 라는 쟁점에 대해 최원형 학생은 세계화 속에서 문화가 주류 문화와 비주류 문화로 나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이유를 밝혀주면 완벽한 논증이 될 수 있다. 항상 논증은 쟁점에 대한 주장과 이유, 그리고 근거(사례 또는 설명)의 구조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 제시문 (1)의 관점에서 (2)를 논평한 바탕에서 ‘계급성’에 대한 자기의 주장을 분명하게 펼쳤을 때 좋은 논증이라 말할 수 있다.
표현력
전체적으로 글쓰기에는 무리가 없다. 하지만 논술문은 ‘쟁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쟁점에 대한 자기의 주장, 그리고 이유, 설명의 구조를 가질 때 논술문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글은 대체로 설명문, 또는 수필에 가까운 글이 된다. 최원영 학생은 어휘의 선택이 참 좋다. 아직 구조적으로 미완성이지만 항상 좋은 논술문이기에 발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