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타협으로 풀어가는 甲午년

눈치보다 날린 마음수련원 / 새만금 땅따먹기 '한숨' / 가난·배척 응어리 풀고 지역발전 동력 꾸려가야

▲ 양희섭 KBS 전주총국장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때 전북은 남다른 갈등에 빠져 있다. 흔히 갈등은 국가의 기능이 커지고 정책의 타당성이 부족하다든지 관료주의나 권위주의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전북지역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참 특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새만금은 겨우 방조제 막고 매립이 한창인데 3개 시군이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재판중이다. 국비를 포함해 225억원이 들어가는 국제마음수련원은 익산시의회의 반대로 백지화됐다. 내년이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2주갑, 즉 120주년을 맞이하지만 기념일을 어느 날로 정할지 합의조차 못한 상황이다.

 

먼저 새만금을 살펴보자. 새만금 간척사업은 낙후된 전북을 동북아 중심지로 도약시키겠다며 정부가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이다. 그러나 방조제를 쌓는데 만 기공식 이후 18년 5개월이나 걸렸다. 그사이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해 정권만 여섯 번 바뀌었다. 둑 쌓기로 대부분의 세월을 보낸 것이다. 새만금사업에서는 앞으로 관광레저와 과학연구, 농업,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사업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데 정작 전북 내에서는 ‘땅따먹기’ 타령이다. 공공사업이란 어떤 정권이든 시끄러우면 늦추는 법이다.

 

두 번째, 국제마음수련원 백지화 사태는 어이없는 사례다. 익산 웅포에 들어설 세계적인 치유시설로 국내외에서 많은 이가 찾을 곳으로 주목을 받았다. 찾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면 유동인구 증가로 경제적 파급효과는 확대된다. 당장 대중교통이 활성화돼 운수업계가 살아나고 요식업계, 숙박업계, 익산지역 로컬푸드의 소비도 활기를 띤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역사회 여론주도층의 한 축인 시의회가 막았다는 사실이다. 전적으로 종교적인 이유다. 익산시도 종교인 눈치 보기로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단견(短見)에 머물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동학농민혁명의 기념일 제정이 난항을 겪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일제강점기와 현대사의 우여곡절 속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채 뒤늦게 1980-90년대에 들어서야 집중적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 성과가 기념일 제정 주장의 난립현상으로 비쳐졌다. 더욱이 지역별 기념사업회와 자치 단체간 알력으로까지 비화됐다. 동학농민혁명은 민족주의 운동이나 종교운동, 반봉건 계급투쟁을 뛰어넘는 시민혁명이자 평화운동이다. 전개과정도 전북이나 조선 땅이 아닌 동 아시아적 사건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따라서 12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반드시 기념일 제정 논의가 모두 마무리돼야 한다.

 

예로부터 전북도민은 광활한 호남평야와 망망대해를 끼고 있는 환경적 요인 등으로 늘 이상향을 꿈꾸는 넉넉한 마음을 지녔지만 불의에 항거해온 유전인자도 타고 났다. 그래서 왕도(王都)가 전주와 익산, 두 곳이 아니던가. 격동의 현대사에서 전북이 가난과 배척, 소외로 응어리졌다면 이제 스스로 풀어야 한다. 바야흐로 지역발전을 위한 성장동력(growth engine)은 지역민 스스로 꾸려가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따라서 갈등도 타협으로 풀어가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래야만 멋진 도약을 꿈꾸는 갑오년, 말의 해를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