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시대의 희망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주역〉의 비(否)괘는 오늘날과 같은 소통부재의 상황을 잘 그려주고 있다. 군자들이 어떻게 핍박받고 내몰리는지, 소인배들이 어떻게 활개 치는지를. 이 격절의 불통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까지도. 이 괘의 상을 보면 위에 하늘(乾)이 있고 아래에 땅(坤)이 있다. 하늘의 기운은 위로 올라가고 땅의 기세는 아래로 내려가려 하니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 언로가 막혀버린 불신의 난세를 상징하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 괘의 바로 앞에 태(泰)괘가 배치되어 있는 것. 이괘는 서로가 감통 교감하는 치세(治世)를 나타낸다. 만물유전(萬物流轉)! 잠시 방심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좋은 시절이 이내 악인들이 판치는 세상으로 변해버린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배려!

 

문제는 이 간악한 소인배들의 위선을 간파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 이들의 발호로 조광조가 사약을 마시고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 다반사로 나타난다. 지난 대선 이후 조중동은 물론 종편, 아니 공중파방송까지 장악한 도구적 이성들의 현란한 말들을 보라.

 

첫 효(爻)는 난세의 시작. 세상의 중심을 악인들이 차지하고 있어 선인들은 다시 바른 사회를 회복하기 위해 띠뿌리처럼 연대하며 올곧은 마음을 간직한 채 때를 기다려야 한다. 둘째 효에서는, 소인들이 아첨과 교언(巧言)으로 혹세무민할 때 군자는 물러나 대인의 도를 지켜야 화를 면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 효는 소인배들이 바르지 못한 자리를 독차지하며 부끄러운 짓을 서슴지 않는 난세의 절정을 나타낸다.

 

극즉반(極卽反)! 네 번째 효는 극에 달한 난세를 해쳐나갈 반전의 징후가 나타남을 보여준다.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은인자중하던 의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종교인들의 시국선언과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바로 그런 예이다. 이제 그 막힘이 뚫리고(제 5효) 마침내는 그 상황이 종료되게 마련이다(마지막 효)! 그래서 불통의 시대가 오히려 희망이다.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정착되리라는 안이하고 나태한 마음을 다시 추스르게 해주고 있으니. 저 완악한 무리들의 민낯을 여실하게 목도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중요한 것은 “망하리라 망하리라”(其亡其亡)는 위기의식을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돈벌이와 취업에 연연하면 다시 불통의 시대가 되어 돈벌이도 취업도 딴 나라 얘기가 되고 만다. 낮이 가장 짧은 동지(冬至)를 보내며 꼭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경계의식이다! ·이종민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