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벌써 20년 가깝게 일명 언청이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준 신효근 전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악안면외과 교수는 ‘봉사에 대한 중독’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신효근 교수는 “봉사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눠주는 것”이라면서 “봉사를 통해 느끼는 뿌듯함이 세상을 사는 자양분이 되고 행복의 화수분이 된다”고 밝혔다. 전북일보의 ‘올해의 전북인’으로 선정된 신효근 교수를 만나 봉사의 참 의미와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무엇인지를 되새겨본다.
-의료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은사인 서울대 치과대학 민병일 명예교수의 영향이 컸습니다. 1994년부터 은사를 따라 해외 의료봉사에 나서게 됐습니다. 은사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2년 파월비둘기부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셨습니다. 그런 인연을 앞세워 은사는 베트남 무료봉사를 결심하셨고, 자연스럽게 제자들이 합류하게 됐습니다.”
-의료봉사 대상국으로 베트남을 주목하신 이유가 있다면.
“중국이나 카자흐스탄 등에서도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기는 했습니다만, 뭔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달랐어요. 베트남 관계자들도 처음에는 장비지원 등을 바라기는 했습니다만, 차츰 신뢰가 쌓이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미국·프랑스·중국 등 강대국과 맞서 싸웠던 역사적 배경이 있는 베트남 국민들은 부지런하고 자존감이 강한 편입니다. 한번 믿으면 신의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베트남에서 의료봉사 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만, 현지인들은 한국 의료진을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합니다.”
-그동안 베트남 봉사활동 횟수를 꼽는다면.
“지난 19년동안 베트남 방문이 30차례를 넘습니다. 1994년에는 일본 의료진과 함께 베트남 의료봉사에 나섰고, 1995~1999년에는 은사를 모시고 벤체성과 빈중성을 찾았습니다. 2000년부터는 은사와 별도로 광남성 탐끼시와 하노이치과병원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했습니다. 2006년부터 최근까지는 전북대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후에대학에서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후에대학교에서는 명예교수직을 줬고, 전북대도 베트남 의대생과 치의대생을 초청해 수련과정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어려움이 있었다면.
“지난 1995년 호치민행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을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 넓은 비행기안에 탑승객수가 3명에 불과했습니다. 반공교육의 영향 때문인지, 처음 베트남땅을 밟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모릅니다. 처음 다낭쪽으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로 기억됩니다.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나가라”고 합디다. 전쟁의 상흔이 사그라들지 않았던 탓이겠죠. 또 초기에는 통관과정에서 치과기구와 장비를 모조리 뜯어봐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편견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봉사활동 첫날부터 환자들을 만나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어서 잠자리나 식사에 대한 불편을 느낄 겨를이 없어요. 워낙 피곤해서 누웠다 하면 잠이 들기 때문이죠. 봉사팀은 대개 15명 안팎으로 구성되고, 자비로 경비를 마련합니다. 후에대 의료봉사에는 학교지원을 받습니다만, 학생들도 기본경비를 내야 합니다.”
-자비를 들여 이국에서 의료봉사를 다녀오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찌보면 중독입니다. 아주 좁은 방에서 침대도 없이 맨바닥에 누워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연신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그간의 고생과 시름이 사라집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환자와 가족들이 보내는 눈빛만으로도 ‘과연 살맛나는 세상이구나’하는 보람을 되새깁니다.”
-기억나는 환자를 소개해주신다면.
“고엽제 같은 화학무기의 영향 때문인지, 베트남에는 구순구개열환자가 유난히 많습니다. 꾸준하게 환자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봅니다. 어찌보면 구순구개열이 얼굴상처에 불과합니다만,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환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습니다. 베트남에서 만난 환자들 가운데 58살이 되도록 수술을 못받고 살았던 중년이 있었습니다. ‘얼굴이 흉해 딸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수 없다’고 하소연을 했던 환자였어요. 수술을 받은 뒤 한없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선합니다. 또 월맹군출신 할아버지와 간호장교 출신의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던 손자가 있었는데, 보기드문 기형이었습니다. 6년동안 4차례의 수술을 받고 지금은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동안 600명이 넘는 베트남 환자들이 수술을 거쳐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교수, 판사, 의사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얼굴기형을 떨치고 당당히 사회지도자가 되고, 이를 통해 사회가 건강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여간 즐거운 게 아닙니다.”
-봉사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봉사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눠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 누군가를 웃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이 흐뭇하고 즐겁습니다. 의사로서 이보다 더 큰 만족은 없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봉사란 있는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제자들에게도 ‘너희들은 돈버는 일에 집착하지 말아라’라고 가르칩니다. 베트남도 지금은 우리보다 잘살지 못하는 나라입니다만 앞으로는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국민들이 부지런하고, 자원도 많습니다. 예전에 원조대상국가였던 한국이 이제는 베푸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다면.
“배려와 존중이 필요합니다. 학교도 사회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면 의견충돌이 줄어들 것입니다. 한발 양보하면,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신효근 교수는 얼굴 기형 수술 국내 최고 권위
신효근 교수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겸손과 베푸는 삶에 익숙한 사람에게서 보여지는 편안한 웃음이다.
신효근 교수는 구순구개열과 턱교정 등 얼굴기형수술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지난 1991년 국내 처음으로 구개열 환자를 위한 언어치료실을 개설, 구순구개열환자를 위한 일관 치료체계를 갖춘 주인공이기도 하다.
전주고와 서울대 치과대학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0년 서울대 선배인 김오환 전 교수의 권유로 전북대와 인연을 맺었고, 일본 동경치과대학과 구주대학에서 객원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한국음성학회 회장, 전북대 치과대학 학장, 대한구강악안면외과학회 회장, 대한악안면성형재건외과학회 회장, 대한구순구개열학회 회장 등을 거쳤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치과대학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본부 부총장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베트남 정부는 신 교수의 봉사에 경의를 표하면서 외국인에게는 전례를 찾기 힘든 국민건강훈장을 두차례나 수여했다.
신 교수의 좌우명은 귀수불심(鬼手佛心·귀신같은 솜씨로 환자를 보되 부처님 같은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라), 자심묘수(慈心妙手·자비로운 마음을 가질 때 환자를 잘 볼 수 있다), 지경덕경(智鏡德敬·지식을 거울로 삼되 덕을 베풀어라)이다. 신경과 의사인 아들 형우씨와 사위가 의업을 잇고 있다.